민족 강사

원어 항목명 民族講師
한자 民族講師
분야 문화·교육/교육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일본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원어 항목명 民族講師
정의

1945년 해방 이후 일본 공립 학교에 설치된 민족 학급에서 민족 교육을 가르치는 강사.

개설

한국과 북한에 뿌리를 둔 재일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본의 공립 학교에 설치된 민족 학급에서 우리말·역사·문화 등을 가르치는 사람을 일컫는다. 민족 강사들은 민족 학급을 통해 아이들이 동료들과 함께 자신의 뿌리·민족의 존재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르친다. 또한 민족 학급과의 수업 연계를 통한 각종 문화 교류 등 다양한 다민족·다문화 공생 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배경과 전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조국 광복을 맞이한 재일 한국·조선인은 새로운 국가 건설에 이바지하고자 많은 사람들이 귀국하였다. 당시 200만 명이 넘었다는 재일 한국·조선인의 인구는 귀국으로 인해 60만 명 정도로 줄었다. 재일 한인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민족 교육’이었다. 일본에 잔류를 한 사람들은 즉시 전국 각지에서 강습회 형식의 교육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활동이 1946년 4월 역사·지리, 이과, 수학과 등을 모국어로 가르치는 학교 형식으로 발전하였다. “아이들이 조선인으로서의 교육을 받는 것은 독립된 조선인으로서 내용과 자격을 갖추기 위한 토대”라고 여겼다.

1946년 9월 초급학교 525교, 중학교 4교, 청년 학교 12교에서 한국어·조선어[모국어] 교과서에 의한 교육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1947년 10월 초급학교 541교, 중학교 7교, 청년 학교 22교, 고등학교 8교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교육으로 일본어를 모르는 할머니와 모국어를 모르는 조부모들과 손자 손녀 사이에 단절되었던 대화가 가능해졌다. 1948년 1월 일본 정부는 재일 한인 자녀들에 대해 일본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의무화함에 따라 1948년 3월 12일 민족 학교의 민족 학급을 둘러싼 문제는 해결되었다.

재일 한인의 대규모 시위[한신 교육투쟁]로 인한 거듭된 협상 결과, 1948년 6월 4일 오사카부 지사와 오사카조선인교육문제공동투쟁위원회 간에 ‘각서’ 교환을 계기로 교직 적격자 시험에 합격한 사람을 정규 수업 시간 외에 민족 교육[모국어, 역사, 지리]을 가르칠 수 있게 한 민족 학급이 출범하였다. 처음에는 교실이 없어서 강당을 이용해 수백 명의 아동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현황

오사카를 중심으로 초중학교의 민족 학급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강사는 공립 학교 교장들로 구성된 ‘민족클럽 기술지도자 초청사업 실행위원회’에서 업무 위탁을 받은 정식 직원의 신분으로 민족 학급을 담당하고 있다. 정식으로 채용되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신분 안정은 되었지만, 각 교육위원회에서는 민족 강사를 ‘국제 이해 교육 추진 비상근[시간 강사] 촉탁 직원’으로 취급하고 있다. 이에 관하여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오사카 본부에서는 정식 고용이지만, 상근[전임] 강사의 보수와 같은 수준이 될 수 있도록 관계 부서와 협의 중에 있다. 현재 오사카 시내의 초중학교에서 실시되고 있는 민족 학급은 총 100여 개로 20여 명이 담당하고 있다.

참고문헌
  • 재일본대한민국민단(http://www.mindan.org)
  • 『在日コリアン辭典』(明石書店, 2010)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