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교

원어 항목명 天道教
한자 天道敎
분야 종교/신종교 및 기타 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일본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원어 항목명 天道教
정의

1919년부터 일본 한인 사회에 포교된 신종교.

유학생 중심으로 도쿄전교실 설립

일본에 천도교가 처음으로 관련을 맺은 것은 1901년 3월경이다. 당시 동학교단을 이끌고 있던 손병희는 정부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나가사키[長崎]를 거쳐 오사카[大阪], 교토[京都], 도쿄[東京]에 머물렀다. 손병희는 1906년 2월 한국으로 귀국하였지만 동학을 포교하지는 못하였다. 1919년 3·1 운동 이후 해외 포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천도교는 교인 자제 및 청년들을 일본으로 유학을 보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방정환, 박달성, 정중섭, 이기정 등이었다. 천도교 유학생들은 1921년 2월 13일 천도교청년회 도쿄지회를 설립하고 4월 5일 발회식을 가졌다. 이어 청년들을 중심으로 1922년 1월 천도교 도쿄전교실을 설립하였다.

전교실에서 종리원으로 확장

도쿄전교실이 설립되자 국내 천도교 중앙총부는 천도교청년당의 핵심 간부인 박사직을 전교사로 파견하였다. 천도교 도쿄전교실은 1924년 천도교 도쿄종리원으로 이름을 변경하고 교세를 확장하기 위해 11월 1일 도쿄포덕회를 조직하였다. 포덕회는 회장에 박사직, 간사는 4명, 포덕대원 21명으로 구성되었다. 포덕회는 3대의 포덕대를 조직하여 1928년 3월까지 5개월 동안 활동을 전개하여 교세를 확장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도쿄종리원의 교세는 설립 초기에는 40여 명이었지만 1926년에는 103명으로 늘어났다. 교인들 중에는 대학생이 23명, 중등 학교 및 전공 학원 32명으로 유학생만 55명이었다. 1927년 6월에는 150여 명, 1929년 11월에는 220명이었다. 이후에도 국내 천도교 중앙총부는 꾸준히 도쿄로 유학생을 파견하여 천도교 도쿄종리원의 교세를 유지하였다. 1930년대 이후 천도교 도쿄종리원의 주요 임원은 최병서, 김형준, 박인덕 등이 있다. 전시 체제기에는 교세 학장을 위한 포교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이 따르자 현상을 유지하는 데 최선을 다하였다.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패망으로 해방을 맞이하자 천도교 도쿄종리원에서 활동하던 대부분의 교역자와 유학생이 귀국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폐쇄되었다.

현황

일제 강점기 교토, 오사카, 고베에 각각 천도교 교토종리원, 천도교 오사카종리원, 천도교 고베종리원이 있었다. 이들 천도교는 해방 후 천도교 지방 조직의 이름이 변경됨에 따라 천도교 오사카교구, 천도교 고베교구, 천도교 교토교구로 변경되었다. 천도교 오사카교구와 천도교 고베교구는 천도교 고베교구로 통합되어 계속 유지되고 있으며, 천도교 교토교구는 1980년대까지 유지되다가 해산되었다.

참고문헌
  • 이돈화, 『천도교창건사』3(천도교중앙종리원, 1933)
  • 성주현, 「천도교청년당 도쿄당부의 조직과 활동」(『재일 코리안 운동과 저항적 정체성』, 청암대학교 재일코리안연구소, 선인, 2016)
  • 근파, 「인연 깊은 동경종리원」(『천도교회월보』163, 천도교회, 1924. 4)
  • 일기자, 「최근의 일본 동경 우리 천도교의 상황은 어떠한가」(『신인간』9, 천도교회, 1927. 1)
  • 김병순, 「동경의 천도교의 지위」(『신인간』14, 천도교회, 1927. 4)
  • 박사직, 「동경을 떠나면서」(『신인간』42, 천도교회, 192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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