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在日大韓基督教会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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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在日大韓基督敎會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일본 도쿄도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0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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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항목명 | 在日大韓基督教会 |
성격 | 기독교 단체 |
홈페이지 | http://kccj.jp |
1908년 일본 도쿄에서 설립된 재일 한인의 기독교 연합회.
1883년 수신사의 일원으로 일본에 간 이수정(李樹廷)이 조선인 최초로 일본에서 세례를 받은 후 조선인 유학생들의 신앙 공동체 성격을 띤 조선 안식일 학교[주일 학교]를 개설한 것이 일본에서의 조선인 기독교 활동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1906년 도쿄 조선 기독교 청년회[YMCA]가 설립되어 유학생 대상의 성서 연구회와 예배가 열렸다. 1908년에는 정익로(鄭益魯) 장로와 김정식(金貞植) YMCA 총무가 10여 명의 유학생들과 함께 YMCA와는 별도로 도쿄 교회를 세웠는데, 재일대한기독교회는 이것을 ‘재일 동포 선교’의 출발 시점으로 삼고 있다.
1912년 조선의 장로회와 감리회는 도쿄 전도에 대해 연합 책임을 지기로 합의하면서 이후 양 교파는 교대로 도쿄 연합 교회의 목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특정 교파에 한정되지 않는 합동 교회의 전통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19년에 교토[京都], 1921년 고베[神戶], 1922년 오사카[大阪]에서도 조선인들의 예배가 시작되면서 1922년 12월에 일본 간사이[關西] 지방 재류조선인기독교전도회가 조직되었다. 1927년에는 규슈[九州]의 후쿠오카[福岡]에도 조선인 교회가 설립되었다. 특히 유학생들이 많았던 도쿄와 교토에서는 조선인 교회 및 YMCA가 유학생 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1927년 캐나다 장로교회, 조선기독교연합공의회 및 외국 선교단이 재일 조선인 전도에 대해 협의, 합의하면서 교회의 정식 명칭을 조선기독교회[Korean Christian Church]로 정하였다. 이후 요코하마[横浜], 시모노세키[下関], 나고야[名古屋], 홋카이도[北海道] 등 조선인이 많이 모여사는 곳에서 전도가 시작되고 교회가 설립되었다. 그 규모의 예를 들어보면, 1930년에는 목사가 6명이었고 전도사가 5명이었다. 또 선교사가 6명이었고, 39곳의 교회 및 전도소가 있었다. 1932년 9월에는 교직자 및 목사가 10명이었고 기타 교역자가 7명이었다. 신자는 2414명이었고, 교회가 46곳에 있었다. 1934년 2월에는 캐나다 출신 선교사인 L.L.Young(Lither Lisger Young)[조선명 영재형(榮在馨)]을 회장으로 하는 ‘재일본조선기독교회대회’가 창립되었다. 교회는 51곳이 되었고, 교역자는 27명[목사 9명, 선교사 6명, 전도사 12명]으로 늘었다.
193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의 군국주의와 침략 전쟁이 심화될수록 일본의 조선인 교회 및 목회자, 신도들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고 일본 기독교로의 통합을 강요받게 되었다. 1936년 일본 기독교연맹에 가입하게 되면서 명칭을 ‘조선 기독교’로 개칭되었고, 1938년에는 제3회 조선 기독교대회에서 일본 기독교회와의 합동 혹은 협조가 결정되었다. 이듬해인 1939년에 일본 기독교회는 가입에 대해 1) 일본 기독교회의 신조에 따를 것, 2) 조선인 교역자는 재시험을 볼 것, 3) 포교는 일본어로 할 것 등 세 개 조건을 통지하였다. 조선 기독교회는 조건 완화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1940년 조선 기독교 임시 대회에서 일본 기독교회로의 합동이 결정되었다. 이후 전시 체제 하에서 일본 각지의 많은 조선인 목회자와 신도들이 치안 유지법 위반 등으로 체포되었다.
해방 후 1945년 11월 ‘재일본조선기독교연합회’가 창립되면서 12월에 일본 기독교단에서 탈퇴하고 점차 조선인 교회를 재건해 나갔다. 1948년 10월 재일본조선기독교연합회 제4회 정기총회 자리에서 ‘재일대한기독교회총회’로 개칭되었고, 1999년 제45회 정기총회에서 ‘재일대한기독교회’로 개칭되었다. 재일대한기독교회는 교회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출입국 관리 법안 반대, 외국인 등록법 개정요구, 민족 차별 반대 운동 등 재일 코리안들의 처우 개선과 인권 신장에 힘쓰는 한편 한국의 민주화에도 기여해왔다. 1974년에는 부속 재일한국인문제연구소를 설립하여 재일 코리안을 비롯한 일본 사회의 마이너리티의 인권을 위한 자료 수집하여 연구하였으며, 운동 센터로 운용하고 있다.
기독교 단체 및 교회로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재일 한인 처우개선 및 인권 신장 운동 등 사회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2017년 5월 현재 총회장 김성제(金性濟) 목사, 부총회장 김필순(金必順) 목사, 윤성철(尹聖哲) 장로가 있다. 일본 전국에 교회 수는 97개이고 목사 100여 명과 신도 수는 5천여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