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당

원어 항목명 無窮花堂
한자 無窮花堂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지명/시설
지역 일본 후쿠오카현 이이즈카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개관|개장 시기/일시 2000년 12월 2일
현 소재지 일본 후쿠오카현 이이즈카시
원어 항목명 無窮花堂
원어 주소 日本国福岡県飯塚市庄司 飯塚靈園
성격 납골당
정의

2000년 후쿠오카현 이이즈카시에 건립된 무연고 재일 조선인 납골당.

개설

일제 강점기 강제 연행되어 열악한 환경의 탄광 등에서 가혹한 노동을 하였던 조선인 노동자들은 불의의 사고로 인해 숨지는 경우도 있었다. 해방 이후 한국에서 연고자가 유골을 수습해 가기도 했지만 연락이 되지 않거나 사망 자체가 알려지지 않아서 무연고 상태로 유골이 방치되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임원 배래선이 무연고로 방치된 조선인 노동자 유골 수습을 위해 시민 위원회를 결성하고 무궁화당을 설립하였다.

건립 경위

무궁화당이 생긴 경위는 1995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치쿠호 지부 임원 배래선의 활동에서 비롯되었다. 배래선 자신도 강제 연행 경험자였지만 “과거 역사는 탕감하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수백 회의 강연회와 학습회를 개최하면서 한일 과거사를 주지시켰다. 배래선은 방치된 재일 조선인 유골을 찾기 위해 여러 사찰에 문의를 했고, 유골 수습을 위해 ‘재일치쿠호 코리아 강제 연행 희생자 납골식 추모비 건립 실행위원회’를 결성하였다. 동 위원회는 이이즈카시[飯塚市]와 교섭을 해서 이즈카레이엔[飯塚靈園] 부지 안에 ‘국제 교류 광장’을 조성하고 400여 명의 무연고 유물을 수용할 수 있는 추도비를 세웠다. 2000년 12월 2일에 추도당이 건립되었고, 무궁화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변천

추도문에는 ‘15만여 명의 조선인이 탄광에서 가혹한 노동을 강요당했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일본의 근대화는 조선인을 비롯한 외국인 노동자의 피와 땀, 눈물’로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정재계 인사와 자치단체가 수습되지 않은 유골을 수집해 추도하고 불행한 과거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는 점 역시 추도비에 언급되어 있다. 2003년에는 ‘역사 회랑’이라는 이름의 사진 패널을 전시하여 강제 연행과 창씨개명 등에 관해 방문객들에게 알리고자 하였다.

현황

시민들 중에서 우익 세력의 주도로 추도비와 역사 회랑의 내용을 문제삼아 시 당국에 진정을 내는 이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추도비에 “일방적으로 전쟁 책임을 비난하는 내용이 있다”거나 “조선인 노동자는 있었지만 강제라거나 가혹했다거나 하는 표현의 근거가 없다”는 주장과 “당초 취지에서 벗어나 시의 시설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라고 하면서 시장과 시의회를 압박하였다. 2014년부터 매해 문제 삼아 시 당국에 이를 요청하고 있다. 되풀이되는 이러한 행동에 대해 2016년 2월 무궁화당 관리 법인은 “설립 당시부터 행정 당국과 세세한 회의를 하고 설치한 것이고, 현 시점에서 비문을 수정할 생각은 없다”라고 대응하였다.

참고문헌
  • 伊藤智永, 『忘却された支配: 日本のなかの植民地朝鮮』(岩波書店, 2016)
  • 『한국일보』(2014. 7. 13)
  • 『연합뉴스』(2015. 9. 9)
  • 『産経新聞』(2016.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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