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MORE 왜란 집회

원어 항목명 NO MORE 倭乱集会
한자 -倭亂集會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일본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92년
원어 항목명 NO MORE 倭乱集会
정의

1992년부터 일본 임진왜란 반성 집회 실행위원회가 일본과 한국에서 개최하는 집회.

역사적 배경

1992년 재일 한인 인권운동가인 고 최창화 목사의 제안으로 임진왜란 반성 집회 실행 위원회가 결성되어 일본이 조선에 대해 일으킨 임진왜란과 조선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는 모임을 가지기로 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조선 침략을 위해 전진 기지로 구축했던 규슈의 나고야[名護屋] 성터에서 첫 집회가 열렸다. 일본의 과거사를 반성하고 역사 왜곡 등에 항의하는 내용의 집회를 일본에서 일곱 차례 가졌고, 2000년부터는 매년 임진왜란 침략과 관련있는 한국의 유적지를 찾아 반성의 의미를 담은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2005년 3월 28일 전라남도 여수에서 개최된 집회에서는 일본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인물평을 근대 교육의 산물이라 비판하고, 다음처럼 집회의 목적을 밝혔다. 첫째, 근대 천황제 국가 형성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심어진 조선 정벌 사관과 조선·아시아 멸시 사관 제거. 둘째, 재일 한국·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배외 정책에 대한 항의. 셋째, 강제 연행, 군대 위안부 등에 대한 사죄와 보상이 없는 것에 항의. 넷째, 새로운 역사 왜곡에 항의. 다섯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과 근대 전쟁을 일으킨 요인 탐구와 극복. 여섯째, ‘조선 역사는 일본 역사의 진실을 비추는 거울’인 것처럼 한국 관점에서 조선 침략을 봄으로써 정확한 역사 인식을 가질 것 등이다.

경과

일본 정부의 과거사 왜곡과 독도,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 반대의 의견을 표하고 있다. 2013년 진주 집회에서는 일본에 있는 연지사 종의 환수를 위해 협력하기로 하였다.

결과

일본의 반한 감정 조장과 북한에 대한 노골적 적대 행위를 중단하고, 탈천황제와 남북 통일을 향해 재일 한인과 연대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매년 임진왜란 발발 시기에 즈음해 여수, 진주, 울산, 의령, 통영, 밀양, 부산 등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유적지를 찾아서 희생자들에 대한 헌화와 반성, 기조 연설 등을 하고 있다.

참고문헌
  • 『中央日報/中央日報日本語版』(2007. 5. 14)
  • 『경향신문』(2012. 3. 21)
  • 『경남도민일보』(2013. 3. 26)
  • 『경남매일』(2015. 3. 30)
  • 『부산일보』(2017.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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