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가와 사건

원어 항목명 多奈川事件
한자 多奈川事件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일본 오사카부 센난군 다나가와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52년 3월
발생|시작 장소 일본 오사카부 센난군 다나가와
원어 항목명 多奈川事件
정의

1952년 3월 일본 오사카 다나가와에서 발생한 밀주 적발 사건.

개설

1952년 다나가와[多奈川]에서 밀주 적발이라는 명목 하에 일본 세무소와 경찰서가 재일 한인 밀집지를 대상으로 일제 조사를 실시하였다. 밀주와 관련된 다수 설비를 압수하였으나 실제로는 재일 한인 부락에 대한 구체적인 탄압의 일환으로 진행한 사건이다. 일제 조사 과정에서 다수의 재일 한인들이 모여 저항하였고 조사 트럭을 점유하면서 운전수, 경찰, 단속 공무원 등과 신체적인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후 다나가와 파출소 앞에서 항의 데모가 진행되었고, 일본 측은 향후의 법적 처리를 위해 사진 채집 등을 하면서 대응을 모색하였다. 결국 기자 및 단속원과의 충돌이 이어졌고, 단속 경찰로부터 도망가는 과정에서 재일 한인 한 명이 권총에 맞아 목숨을 잃기도 하였다.

역사적 배경

표면적으로는 불법 밀주 단속으로 이루어진 사건이었으나 그 배경에는 재일 한인을 둘러싼 차별과 그로 인해 겪어야 했던 생활고 나아가 ‘출입국 관리령 시행’과 같이 재일 한인을 향한 일련의 제재가 원인이 되어 일어난 사건이었다.

결과

다나가와 사건으로 기소된 인원은 총 19명으로 주세법 위반 5명[그 중 1명은 일본인], 공무 집행 방해 16명, 상해 5명, 업무 방해 1명이 그 내용이었다. 1954년 판결이 나왔는데, 주세법 위반은 유죄였으나 공무 집행 방해는 일부 무죄였고, 유죄의 경우에도 집행 유예 판결이 내려졌다.

의의와 평가

판결문의 ‘피고인들로 하여금 이러한 상황을 만든 데에는 일본도 깊은 책임이 있다’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다나가와 사건은 재일 한인에 대한 무리한 법적 집행과 피차별적 역사 경험이라는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볼 수 있다. 재일 한인 인권 운동에서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참고문헌
  • 『大阪府警察史 第3巻』(大阪府警察史編集委員会編,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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