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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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94년 6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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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 장소 |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고호쿠구 쓰나시마역 |
1990년대 일본에서 민족 학교 여학생을 대상으로 한 폭행 사건.
1994년 4월부터 6월에 걸쳐 민족 학교인 조선 학교 학생에 대한 폭행과 괴롭힘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1993년 3월 북한이 동해를 향해 노동 1호의 실험 발사를 실시하였고, 1994년에는 북한의 핵 개발 의혹으로 한반도뿐만 아니라 북미·북일의 긴장 고조, 유엔 안보리의 경제 제재 논의 시작 등 북한에 대한 보도가 자주 매스컴에 등장하였다. 이를 접한 일부 일본인들은 조선 학교 학생들에게 침을 뱉거나, 학교 폭파 위협, 조선으로 돌아가라는 폭언을 퍼부었고, 협박 전화도 하였다. 그 이전에도 1987년 대한 항공기 폭파 사건 등 북일 관계의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조선 학교 학생들에 대한 폭행 사건이 있었지만 1994년 4월부터 이러한 협박과 폭행이 집중되었다. 그 중에서도 신체적으로 연약한 여학생을 상대로 한 폭행 사건이 치마저고리 찢기 사건이다.
1994년 6월 24일 도큐[東急] 도요코선 쓰나시마역[綱島駅]의 플랫폼에서 가나가와 조선 중급 학교 여학생이 한 남성에게 치마저고리를 잡히고 등과 배 등을 맞아 병원에 입원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신문에 크게 보도되었지만 일각에서는 자작극이 아닌가 하는 주간지 기사가 게재되어 물의를 일으켰다. 조선 학교 측은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교사가 동반해 집단으로 등학교를 실시하거나 표적이 되기 쉬운 치마저고리 착용의 일시 중지를 실시하였다.
1999년부터는 학생의 안전을 고려해 통학시에 블레이저와 스커트로 된 교복을 임의로 착용하게 했지만, 2002년 9월 17일 북일 정상 회담에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사건과 치마저고리를 대상으로 한 폭행 사건이 다시 빈발하게 되었다.
2002년 11월 한 변호사 모임이 실시한 간토 지역 조선 학교를 대상으로 실시한 앙케이트 조사에서는 조사에 응한 2,710명 중 실제로 피해를 입은 학생들이 522명에 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