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信託統治反対運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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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信託統治反對運動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46년 1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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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항목명 | 信託統治反対運動 |
1945년 12월 모스크바 삼상 회의의 한반도 신탁 통치 결정에 대한 재일 한인의 반대 운동.
1945년 12월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미·영·소 3국 외상 회의에서 나온 ‘조선 독립 문제에 관한 결의’는 조선민주 임시 정부의 수립과 임시 정부를 미·영·중·소의 4대국이 5년간의 신탁 통치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삼상 회의의 결정이 공식 발표일보다 하루 앞선 1945년 12월 27일자 『동아일보』에 의해 “소련은 신탁 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이라는 잘못된 제목과 내용으로 보도되는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국내에서 치열한 반탁 운동이 일어나 좌-우의 대립이 격화되는 형태로 전개되었다.
오보 사실이 일본 사회에도 전해지자 재일 조선인 단체들도 이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고 각각 활동을 전개하였다. 재일조선인연맹은 내부 논의를 거쳐 1946년 1월 16일에 ‘조선 신탁 통치안에 대한 재일조선인연맹 총본부 견해’를 발표하였다. 재일조선인연맹은 남한에서 내놓은 ‘4대 정당 공동 성명서’를 평가하면서, 모스크바 삼상 회의 결의는 조선의 독립을 원조하고 촉진하는 것이라는 인식에 근거하여 ‘삼상 회의 결정 지지’를 표명하였다. 재일조선인연맹 중앙 위원회는 지지 견해를 승인하고 확정하였다. 국내의 민주주의민족전선에 가입한 재일조선인연맹은 모스크바 삼상 회의 결의에 근거하여 조선민주 임시 정부의 수립을 실현하기 위해 미·소 공동 위원회를 지지하였다.
한편 신조선건설동맹과 조선건국촉진청년동맹은 모스크바 삼상 회의 결의의 신탁 통치 조항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1946년 1월 21일에 간다[神田] 공립 강당에서 신탁 통치 반대 민중 대회를 개최하였다.
국내와 마찬가지로 일본 내에서도 모스크바 삼상 회의 결의에 대한 지지냐 반대냐를 둘러싸고 내분이 일어났고, 재일 조선인 사회는 좌,우로 분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