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노세키 사건

원어 항목명 下関事件
한자 下關事件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일본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49년 8월 19일
발생|시작 장소 일본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
원어 항목명 下関事件
성격 재일본조선인연맹과 재일한국거류민단의 충돌 사건
정의

1949년 8월 일본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에서 발생한 재일본조선인연맹과 재일한국거류민단의 충돌 사건.

개설

‘시모노세키[下關] 사건’은 1949년 8월 19일 새벽에 재일본조선인연맹 시모노세키 지부 소속 수백 명이 재일한국거류민단 사무소와 간부의 집을 습격하여 132명이 검거된 사건을 말한다. 시모노세키 사건은 1949년 9월 재일본조선인연맹에 대한 해산 조치가 내려지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역사적 배경

1948년 4월 민족 교육에 대한 탄압[일명 ‘한신 교육투쟁[阪神敎育鬪爭] 사건’], 8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이은 9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건국, 그리고 1949년 들어서 중국 혁명의 승리가 확정되어가는 등으로 인해 동아시아 정세는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연합군 최고사령부[GHQ]나 일본 정부[당시 요시다[吉田] 내각]는 대규모 인원 감축을 포함한 초긴축 정책[도지 라인]을 강행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일본 내에서 공산당 등 좌파 세력과 대립이 격화되어가는 가운데 재일본조선인연맹은 일본 정부에 반대하여 공산당과 공동으로 재일한국거류민단·건청(建靑) 등과 폭력 항쟁을 되풀이하였다. 예컨대 7월에는 재일한국거류민단 미야기현[宮城縣] 본부장이 조선민주청년동맹 구성원을 살해하는 사건(일명 ‘시오가마[鹽竃] 사건’)이 일어났다. 시모노세키 사건은 이 시오가마 사건에 이어 일어난 재일본조선인연맹의 항쟁이었다.

경과

대한민국 정부는 1949년부터 한국 외에 거주하는 동포를 대상으로 ‘재외 국민 등록’을 개시하였다. 이에 재일한국거류민단은 ‘등록’을 강요하였고 재일본조선인연맹 측은 이에 분개하던 상황이었다.

1949년 8월 19일 밤 11시경 재일본조선인연맹 사무소 앞에 약 150명의 재일조선인이 모여 재일한국거류민단을 비난하는 집회를 열었다. 집회 그 자체는 큰 문제가 없었으나 재일본조선인연맹 성원과 재일한국거류민단 성원이 길거리에서 마주치자 충돌이 일어났고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에 재일본조선인연맹은 8월 20일 오전 2시 30분경 200명의 성원이 재일한국거류민단 시모노세키 지부 사무소와 간부의 자택을 습격하여, 19채의 집이 파괴되는 등의 결과를 초래하였다.

결과

1949년 8월 21일 시모노세키 경찰과 국가 지방 경찰의 합동으로 ‘시모노세키 사건 합동 경비 본부’를 설치하여 208명을 검거하였다. 이 가운데 최종 75명이 기소되었다. 재일본조선인연맹이 조선민주청년동맹과 함께 ‘「단체 등 규정령」’의 적용을 받아 해산 단체로 지정된 것은 시모노세키 사건이 일어난 다음 달인 1949년 9월 6일이었다.

참고문헌
  • 『재일코리안사전』(정희선 외 옮김, 선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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