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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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발생|시작 시기/일시 | 2006년 5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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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 시기/일시 | 2006년 7월 6일 |
발생|시작 장소 |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후지미 2-14-15 조총련 중앙 본부 건물 |
관련 인물/단체 | 민단|조총련| 하병욱|허만술 |
2006년 하병옥 단장은 취임 직후 회견에서 “재일조선인총연합회와 화해를 위해 협의할 것”이라고 언명하였고, 이에 대해 재일조선인총연합회 허만술 의장이 호응함에 따라, 2006년 5월 17일 재일조선인총연합회 중앙 본부에서 양측 대표의 회담이 최초로 실현되었다. 회담 이후 하병옥 단장과 서만술 의장은 2000년 ‘6·15 남북 공동 선언의 이념에 따라 반목과 대립을 화해와 화합으로 전환’한다는 취지로 ‘재일본대한민국민단과 재일조선인총연합회-화해와 화합의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성명의 내용은 1. 양 단체의 화합과 재일 한인 사회의 민족적 단합, 2. 6·15 민족 통일 대축전 공동 참가, 3. 8·15 기념 축제 공동 개최, 4. 재일 한인 사회의 새 세대 교육과 민족 문화의 진흥, 5. 재일 한인 사회의 복지 활동과 권익 옹호 확대, 6. 합의 사항을 이행을 위한 상설 창구 설치 등 6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2006년 6월 1일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중앙 집행 위원회에서 ‘재일본대한민국민단과 재일조선인총연합회-화해와 화합의 공동 성명’의 합의 사항이었던 6·15 민족 통일 대축전 공동 참가의 승인이 거부되었고, 2006년 6월 24일 임시 중앙 위원회에서는 성명의 철회를 촉구하는 등 분규가 속출하였다. 결국, 2006년 7월 6일 하병옥 단장은 성명의 백지화를 표명하고, 2006년 8월 22일 사임하였다. 2007년 6월 15일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중앙은 하병옥을 제명하였고, 최초로 시도된 재일본대한민국민단과 재일조선인총연합회의 화해 시도는 실패로 귀결되었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과 재일조선인총연합회-화해와 화합의 공동 성명’은 6·15 남북 공동 성명의 공동 실천의 결의는 물론, 동포 사회의 교육, 문화, 복지, 그리고 권익의 옹호 등, 구체적인 협력 사항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그리고 양 단체 간의 문제 해결을 위한 창구의 설치도 합의하고 있어 성명의 합의 실행을 위한 의지가 확인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재일 조선인 역사에 대한 양 단체 간의 상이한 평가와 일본 내 참정권 획득 운동 등 현안에 대한 이견들은 여전히 존재했었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과 재일조선인총연합회의 화해를 둘러싼 분규와 혼란의 쟁점을 보면 탈북자 지원 문제를 둘러싼 대립 등, 한국 사회의 남남 갈등이 재일 조선인 사회에 재현되고 있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