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자유 왕래 운동

원어 항목명 祖国自由往来運動
한자 祖國自由往來運動
영문 Movement for the coming of freedom to the fatherland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일본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63년
원어 항목명 祖国自由往来運動
정의

1963년 이래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총연합회를 중심으로 전개된 북한 자유 왕래 실현을 요구한 운동.

개설

1963년 이후 재일조선인총연합회를 중심으로 전개된 조국[북한]에의 자유 왕래 실현을 요구한 운동이다. 1963년 5월 1일 메이데이 기념 재일조선인중앙대회에서 조국[북한]에의 자유로운 왕래 실현을 요구하는 결의가 채택되었다. 1963년 7월 북한 정부는 이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여, 일본 정부에게 재일 조선 공민의 정당한 요구를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였다. 이후 재일조선인총연합회는 일조 우호 운동 단체 및 일본 내 혁신 세력과 연대하며 조국 자유 왕래 운동을 전개했다.

역사적 배경

1952년 4월 19일 일본국 법무국 민사국장 명의의 통달로 재일 한인들은 일본 국적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후, 재일 한인은 일본 정부로부터 재입국 허가를 받지 않은 채 출국했을 경우, 일본 재입국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1950년대 후반 재일조선인총연합회가 전개한 귀국 운동의 결과, 1959년 12월 제1차 귀국선이 니가타[新潟]항을 출발하며 북한으로 귀국의 길이 열렸다. 하지만 1960년을 정점으로 1962년부터는 귀국자 수가 상당수 감소하였다. 이 무렵부터 재일조선인총연합회는 조국 자유 왕래 운동을 병행하였다.

경과

1963년 3월 재일조선인총연합회는 ‘민주주의적 민족 권리 옹호 투쟁’의 구체적인 행동 방안으로 조국 자유 왕래 실현 운동의 추진을 내걸고, 나아가 일본 국민과의 연대를 강화할 것을 결정하였다. 1963년 9월, 일조협회 및 일본 공산당, 일본사회당,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 등 60여 단체가 일조왕래자유실현연락회를 결성하여 재일조선인총연합회의 운동을 지지, 협력하였다.

1964년 3월 재일조선인조국왕래요청단이 오사카[大阪]를 출발하여 37일간에 걸쳐 약 720㎞를 걸은 끝에, 도쿄[東京]에 도착하여 조국왕래요청재일조선인중앙대회를 개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고, 일본 내 지방 의회에서도 일조 왕래 운동을 지지하는 결의문이 채택되기도 하였다.

결과

실질적으로 재일조선인총연합회의 조국 자유 왕래 운동은 일본 정부에 조국[북한] 방문을 위한 재입국 허가를 요구하는 운동이었으며, 재일조선인총연합회는 조국 자유 왕래 운동을 어디까지나 기본적 인권 문제로 접근하려 하였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한일 회담을 저지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을 갖은 운동으로 치부하여 허가하지 않았다. 북한 방문을 위한 재입국 허가는 한일조약이 체결된 이후인 1965년 12월에 처음으로 고령자 3명에게 발부되었다.

의의와 평가

재일조선인총연합회가 주도했던 귀국 운동이 성공한 이유는 일본 내 좌파든 우파든 정치적 의도는 달랐어도 재일 한인을 귀국시킨다는 점에서 상호 간의 의견이 일치하였기 때문이었다. 귀국 운동에 관해서는 기본적 인권에 기초한 문제로서 북한 귀국을 허용한다는 일본 정부였지만 조국 자유 왕래 운동에 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조국 자유 왕래 운동을 통해 재일 한인의 기본적 인권에 관한 일본 정부의 이중적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참고문헌
  • 김현수, 『일본에서의 한일회담 반대운동: 재일 조선인 운동을 중심으로』(선인, 2016)
  • 『在日朝鮮公民の祖国への自由な往来を実現するために』(196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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