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小樽高商事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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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小樽高商事件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일본 홋카이도 오타루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25년 10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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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 시기/일시 | 1925년 10월 15일 |
원어 항목명 | 小樽高商事件 |
1925년 10월 일본 홋카이도 오타루 고등상업학교 학생들의 군사 교련을 계기로 벌어진 재일 조선인 사회 운동.
1925년 10월 15일 군사교관 스즈키 소좌의 지휘 하에 오타루 고등상업학교[小樽高等商業学校]에서 야외 군사교육이 이루어졌고, 스즈키 소좌는 오타루신문사에 상정문을 게재하였다. 지면에 실린 상정문에는 “무정부주의자단은 불령선인을 선동하여 기회를 틈타 삿포로 및 오타루를 전멸시키려한다[政府主義者団は不逞鮮人を煽動し此機に於て札幌及小樽を全滅せしめん]”라는 문장이 있었다. 『오타루신문』에 실린 상정문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오타루 상정문을 본 사회과학연구회의 학생들, 오타루 총노동조합, 김용식을 비롯한 재일 조선인들이 신문사와 학교 당국에 “이는 조선인에 대한 모욕”이라면서 항의하게 된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학교 측이 작성한 경위서에 의하면 ‘16일 오전 9시 경 정치 연구회 오타루 지부 대표, 오타루 총노동조합 집행 위원 사카이 카즈오, 오타루 재일 조선인 김용식 외 수 명은 교장이 출장으로 인해 부재중이라 수석 교사 나카무라의 집으로 찾아가 전날 시행한 야외 교련이 온당치 못하고, 공정하지 못한 점에 대해 학교 당국에 성명서를 요구하였다.’고 항의 행동의 처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 당국은 상정문은 전혀 부당하지 않으며, 항의를 인정하지 않았고 성명서 내는 것을 거부하였다. 17일이 되어 항의단은 스즈키 소좌의 집을 방문하여 야외 교련의 상정이 정당하다고 믿고 이를 작성하였는지 질문하였다. 이에 스즈키는 ‘상정은 가정일뿐이며 아무런 근거없이 정황을 작위되고 있는 교련 실시는 정당한 것이었으며,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어구를 사용하여 제군들의 감정에 상처를 입힌 것은 실로 유감이라 생각한다.’라고 답하였다. 그러나 항의 단체는 답변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불만을 표출하였다.
오타루 상정문에 관한 문제는 이후 일본 각지에 전해져 도쿄[東京], 오사카[大阪], 고베[神戸], 교토[京都] 등지에서 일본인, 재일 조선인 노동 단체와 학생들이 모여 운동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 10월 28일 도쿄의 시바 공원[芝公園]에서는 10명의 변사가 군사 교육 규탄 연설회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