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라 사건

원어 항목명 平事件
한자 平事件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일본 후쿠시마현 다이라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49년 6월 30일
원어 항목명 平事件
정의

1949년 6월 30일 일본 후쿠시마현 다이라시에서 발생한 공안 사건.

역사적 배경

후쿠시마현[福島県] 다이라시[平市] 경찰서는 조반의 중소 탄광 쟁의를 무력 경찰을 투입하여 진압하였다. 또 조선인이 많이 사는 거주지에 생활 탄압을 하였다. 따라서 탄광 노동자와 재일 조선인들은 경찰에 대한 불만이 높은 상황이었다. 이러던 중 1949년 4월 13일에 일본 공산당 후쿠시마현 이와키 지구 위원회는 다이라시 경찰에게 선전용 게시판 설치를 위해 도로를 잠시 사용할 목적으로 사용 허가 신청을 제출하였다. 다이라시 경찰은 사용을 허가하였지만, 게시판은 다이라시역 앞 시가지에 있었기 때문에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교통에 혼잡이 빚어졌다. 결국 경찰은 허가를 취소하였다. 그러자 일본 공산당 후쿠시마현 이와키 공산당원들은 이를 ‘정치 활동에 대한 탄압’이라며 크게 반발하여 다이라시 경찰과 대립하게 되었다.

경과

1949년 6월 30일부터 일본 공산당 이와키 지구 위원회는 약 400여 명의 노동자와 재일본조선인연맹 이와키 지부 소속 김봉금, 김명복 등 100명이 넘는 재일 조선인들과 함께 항의 운동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노동자 해방과 사회 평등을 상징하는 노래 ‘인터내셔널’을 부르며 경찰서 내로 난입하였다. 노동자와 재일본조선인연맹 사람은 행동을 저지하려는 경찰관을 집단 폭행하고, 유치장에 체포되어 있던 자들을 해방시켰다. 경찰관을 유치장에 가두었으며, 경찰서의 유리창을 부수기도 하였다. 노동자와 재일본조선인연맹 회원은 공안 위원회의 소집과 다이라시 경찰서장의 사직을 요구하였다. 또 노동자와 재일본조선인연맹 회원은 경찰서를 점유하는 동안 붉은 깃발을 내걸고 ‘인민 경찰이 탄생하였다’고 자칭하며, 시내 곳곳에 검문소를 세우고 경계를 강화하였다. 오후 11시가 되어 근처의 현에서 경찰 부대가 온다는 보고가 들어오자 해산하였다.

결과

이후 경찰 당국은 1949년 7월과 8월 두달에 걸쳐 230명을 체포하였다. 이 중 157명은 소요죄가 적용되어 기소당하였다.

의의와 평가

다이라 사건은 재일본조선인연맹을 강제 해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문헌
  • 『재일코리안사전』(정희선 외 옮김, 선인, 2012)
  • 篠崎平治, 『在日朝鮮人運動: 実務教養選書』(令文社, 1955)
  • 李瑜煥, 『日本の中の三十八度線―民団·朝総連の歴史と現実―』(洋々社,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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