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椎名メ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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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작성 시기/일시 | 1974년 9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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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항목명 | 椎名メモ |
성격 | 구상서 |
관련 인물 | 시나 에쓰사부로[椎名悅三郞]|문세광(文世光)|박정희(朴正熙)|육영수(陸英修) |
발급자 | 일본 정부 |
수급자 | 한국 정부 |
1974년 문세광 사건 처리에 관해 일본 정부 특사가 한국 정부에 전달한 구상서.
시나[椎名] 메모는 1974년 8월 발생한 문세광(文世光) 사건을 처리할 때 일본 정부의 시나 에쓰사부로[椎名悅三郞] 특사가 한국 정부에 직접 전달한 구상서(口上書)이다.
문세광 사건이란 1974년 8월 15일 오사카[大阪] 출신의 재일 한인 2세 문세광이 광복절 행사장에서 대통령 박정희(朴正熙)를 저격하였으나 옆자리의 영부인 육영수(陸英修)가 사망한 사건을 말한다.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문세광 사건에 대한 법적·윤리적 책임을 지고 북한계 조직의 법적 보호를 박탈하도록 요구하였으며 만약 요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외교 관계를 단절하겠다고 경고하였다. 일본 정부는 영부인의 비극적 죽음에는 조의를 표하였다. 하지만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일본은 책임이 없다고 하며 일본에서의 반한 운동(反韓運動)에 대하여 초법적 조치를 취하기를 거부하였다. 이에 양국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자 미국 정부가 나서서 국교 단절의 위기에 처한 상황을 한일 양국 정부에 전달하고 타협책을 강구하였다. 결국 미국의 중개로 시나 에쓰사부로 특사의 한국 방문이 실현되었다. 1974년 9월 19일 방한한 시나 에쓰사부로 특사는 암살 사건에 대한 유감의 뜻을 한국 정부에 표명하였다. 그리고 일본 측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을 비롯한 일본의 반한 단체를 철저히 감시하겠다는 구상서를 직접 전달하였다. 그런데 구상서는 시나 에쓰사부로가 방한하기 전에 양국 간에 미리 조정을 거듭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시나 에쓰사부로 특사의 방한 일정도 하루 늦어졌다.
문세광 사건 직후 외무부는 재일 한인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한 것과 관련하여 일본 정부의 법률적·도의적 책임 인정 여부에 가장 큰 관심을 기울였다. 외무부 동북아1과가 8월 21일 작성한 「대통령 저격 사건과 관련한 대일 조치 방안[시안]」에도 일본의 책임 여부에 대한 법률적 검토 내용이 담겨 있다.
문세광 사건에 대해 일본 언론은 대북 편향적 보도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의 반국가적 범죄 활동을 부추긴 면이 있으며, 재일 한인 사회의 대표적 단체인 재일본대한민국민단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의 갈등이 심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