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본행원리친목회

원어 항목명 在日本杏源里親睦会
한자 在日本杏源里親睦會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일본 오사카부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원어 항목명 在日本杏源里親睦会
정의

1930년대 일본 오사카에서 결성한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출신자들의 상호 부조 친목 단체.

설립 목적

제주도 사람들은 일제 강점기 1910년대 후반경부터 돈을 벌러 오사카[大阪]로 건너가 일했는데, 특히 행원리 출신자는 인쇄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객지인 오사카에서 제주도 사람들은 각 리 단위로 상호 부조를 목적으로 친목 단체를 결성했는데, 행원리 출신자들도 1930년대 초까지 ‘상호회’라는 친목 단체를 만들어 100명 이상이 참가하였다고 한다. 매월 회비로 100전을 내고, 결혼식과 장례식, 입원과 출산 등 일손이 필요할 때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다.

변천

1937, 38년경에 ‘향우회’로 명칭을 바꾸었으나 해방 직후의 혼란 속에서 일단 소멸하였다. 곧바로 ‘재일본행원리친목회’라는 현재의 이름으로 재조직되었으나, 1949년 단체 등 규정령[團體等規正令] 제정의 영향으로 다시 해산되었다고 한다. 그 후 행원리 친목회는 다시 결성되었는데 1959년 이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의 ‘귀국 운동[재일동포 북송사업]’이 시작되자 행원리 출신자 중 약 마흔 가구의 가족이 북으로 건너갔다. 당시 행원리 친목회의 창립과 운영에 관여하던 중심 회원들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관계자들이었는데,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조직으로부터 제주도 각 마을 친목회는 통일 운동과 뜻을 같이 하지 않는다고 비판을 받았다. 이에 행원리 친목회가 해산을 선언, 살구 그림이 그려진 회기를 불태웠다고 한다.

행원리 친목회는 1980년 다시 결성되는데, 이때도 이전의 회원들이 중심이 돼서 재건에 힘썼다. 규약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운영하며 신년회와 봄꽃놀이를 겸한 총회 등의 행사를 개최하였다. 1997년에는 약100세대가 속해 있었으며, 회원은 약 200명이었다. 그 중의 20-35세 남녀 40명으로 청년회를 조직해서 일본에서 태어나 고향의 사정을 잘 모르는 청년회 젊은이들이 그 당시 친목회 운영을 이어받아 활동하고 있었다. 2008년에는 회원이 48세대까지 줄어들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회원은 월회비와 여러 부조금 이외에, 가령 1995년 1월 한신[阪神] 아와지[淡路] 대지진 때에는 피해를 입은 회원에 대한 의연금을 모으는 등의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1995년 제주도 행원리에 마을 회관을 신축할 당시 약 900만 엔의 기부금을 모았는데 이는 전체 기부금의 2/3를 차지하였다.

현황

매월 월례 모임을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으며, 회원간 친목을 도모, 고향 방문 등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일본에 정주하고 있는 제주 구좌읍 행원리 출신의 친목 단체이지만 고향에 대한 애향심을 고취시키고 있으며, 지역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참고문헌
  • 이지치 노리코, 「‘국경선을 넘는 생활권’의 생성과 변용, 재일 제주도 출신자의 이동 경험으로부터」(『재일제주인과 마이너리티』, 경인문화사, 2014)
  • 이지치 노리코, 『일본인학자가 본 제주인의 삶: 생활세계의 창조와 실천』(경인문화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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