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朝鮮統一民主同志会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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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朝鮮統一民主同志會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설립 시기/일시 | 1948년 10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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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시기/일시 | 1954년 2월 |
원어 항목명 | 朝鮮統一民主同志会 |
1948년 10월 일본에서 재일본대한청년단 합류를 거부한 조선건국촉진청년동맹 내의 통일파를 중심으로 결성된 단체.
1948년 당시 재일본조선인연맹 내에는 일본 공산당파[김천해 등 일본 공산당 간부 그룹], 통일파[이강훈, 백무 등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일본 내에서 재일 조선인 우파 단체와의 협조를 주장한 그룹], 조국파[한덕수 등 북한과의 긴밀한 연대를 주장한 그룹]가 대립하고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1948년 1월 28일에 제13회 재일본조선인연맹 중앙 위원회에서 통일파의 백무가 서기장에서 파면되고 조국파의 한덕수가 부상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한반도 내에서 신탁 통치 반대와 완전한 자주 독립 국가 건설을 주장하면서 건설된 조선건국촉진청년동맹 내부에서도 대립이 발생하였다. 즉, 조선건국촉진청년동맹은 남한만의 단독 선거와 이승만을 지지하는 파와 남북 협상과 통일을 지지하는 파로 분열되었다.
1948년 7월에 조선건국촉진청년동맹 임시 대회에서는 단독 선거 반대와 협상 노선 지지가 결정되었다. 1948년 10월과 1949년 6월의 임시 대회에서 이승만 지지로 형세가 바뀌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조선건국촉진청년동맹의 독립파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재일본대한민국민단에 합류하지 않고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내부의 단독 선거 반대파와 연합하여 이승만 반대를 주장하면서 조선 통일민주동지회를 조직하였다. 위원장에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의 초대 부단장을 역임한 이강훈(李康勳)이, 부위원장에는 문동건(文東建)이 선출되었다.
조선 통일민주동지회는 재일본대한청년단 합류를 거부하고 조선건국촉진청년동맹 내의 통일파를 중심으로 1948년 10월에 결성된 단체이다. 줄여서 통일동지회라고도 한다. 1954년 2월에 해체되었다.
조선 통일민주동지회는 1951년 1월에 비공식 조직으로 건설된 재일조선통일민주전선에 참가하여 활동하였으나 재일조선통일민주전선 4전 대회부터 노선 대립과 갈등이 발행하면서 1954년 1월에 조선 통일민주동지회의 위원장인 이강훈이 재일조선통일민주전선을 탈퇴하게 된다. 이 때문에 이강훈은 재일조선통일민주전선에서 제명되었다. 그러자 조선 통일민주동지회가 재일조선통일민주전선의 결정을 지지하고 1954년 2월에 조선 통일민주동지회 제3회 임시 대회에서 이강훈을 제명하고 문동건을 새로운 위원장에 선임하였다. 그러나 이강훈이 제명된 후에는 조선 통일민주동지회는 유명무실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해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