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在日本朝鮮民主靑年同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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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在日本朝鮮民主靑年同盟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일본 시즈오카현 |
시대 | 현대/현대 |
설립 시기/일시 | 1946년 9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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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시기/일시 | 1949년 9월 |
최초 설립지 | 일본 시즈오카현 |
원어 항목명 | 在日本朝鮮民主靑年同盟 |
원어 주소 | 日本國静岡県 |
성격 | 청년단체 |
해방 직후 재일본조선인연맹의 지도 아래 결성된 재일 조선인 청년 조직.
해방 직후에 결성된 조선 청년자위대는 1946년 4월에 GHQ에 의해 해산되었다. 그러자 재일본조선인연맹은 독자적인 청년 조직 결성을 위하여 재일본조선민주청년동맹 본부를 조직하였다.
재일본조선인연맹의 지도 아래 재일 조선인의 청년 조직인 재일본조선민주청년동맹이 결성되었다. 1946년 9월에 시즈오카현[静岡県]에서 재일본조선민주청년동맹 본부를 조직하였다. 재일본조선민주청년동맹은 재일본조선인연맹의 지도 아래 총선거에서 일본 공산당 후보를 지원하고, 참정권 획득 운동을 하였다. 또 조국의 임시 정부 수립을 촉진하였고, 예능제와 민족 문화회 등의 일을 하였다. 「외국인등록령」 반대 운동을 하였으며, 생활 협동조합 운동을 하였다. 또한 재일본대한민국민단·조선 건국청년동맹 등과의 투쟁을 전개하였다. 재일본조선민주청년동맹은 1949년 9월에 GHQ가 발표한 ‘「단체 등 규정령」’에 적용되어 재일본조선인연맹과 함께 해산되었다. 재일본조선민주청년동맹은 이후 1952년 10월에 결성된 재일본조선민주애국청년동맹으로 이어졌다가 1955년 8월에 결성된 재일본조선청년동맹으로 계승되었다.
1949년 9월에 재일본조선민주청년동맹 본부를 조직한 후, 가나가와[神奈川], 도쿄[東京] 등 전국의 13개 지역에 하부 조직을 결성하였다. 또 하부 조직을 기초로 하여 1949년 12월에 재일본조선민주청년동맹 중앙 결성 준비 위원회를 만들었다. 이때 위원장에는 윤봉구(尹鳳求), 부위원장에는 이응복, 정일이 선정되었으며, 그 외 79명의 중앙 위원, 3명의 재정 감사 담당자를 선출하였다. 1947년 2월 15일에 제2회 중앙 결성 준비 위원회가 소집되었으며, 1947년 3월 6일에 교바시[京橋] 공회당에서 266명의 대의원을 소집하여 재일본조선민주청년동맹 결성 대회를 개최하였다. 재일본조선민주청년동맹은 결성 대회에서 재일 조선인의 생활권 옹호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민족의 정당한 권익과 자유를 유린하는 일본 반동 세력의 타도와 민주 인민 정권 수립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재일본조선민주청년동맹은 조선 민족의 완전한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모든 반동 세력과 철저한 투쟁을 역설한 7개의 강령, 청년 운동의 통일, 생활권 옹호, 조선에서 민주 임시 정부 수립 촉진 등을 제시한 일반 활동 방침도 채택하였다. 이후 1948년 10월에는 본부 47개, 지부 522개, 분회 424개, 반 2,587개의 지방 조직을 결성하였으며, 해산 직전인 1949년 6월에는 조직원 10만 명이라는 거대 조직으로 성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