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韓国民族自主統一連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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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國民族自主統一聯盟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설립 시기/일시 | 1965년 7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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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시기/일시 | 1973년 8월 |
원어 항목명 | 韓国民族自主統一連盟 |
설립자 | 이영근|원심창|곽동의 |
1965년 한일 협정을 둘러싸고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내부에서는 찬성과 반대의 대립이 있었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지도부는 재일한인들이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탈피하고 조국의 반전이라는 대국적 견지에서 한일 협정을 찬성하였다. 그렇지만 박정희 정권을 반대하는 세력은 이를 계기로 박정희 정권 타도 운동을 재개하였다. 한일 협정의 체결은 재일 한인에 대한 모욕, 재일한인의 법적 지위 및 영주권 미보장을 이유로 반대하였다.
박정희 정권은 한일 협정에 대한 반대 시위와 각종 통일 논의가 부상되자 ‘선건설 후통일’의 통일 정책을 발표하였고,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은 정부의 입장을 수용하여 반공 이념의 고수, 국제 연합의 한반도 통일 방안을 지지하는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에 반대하는 세력은 이영근, 원심창, 곽동의 등이 중심이 되어 1965년 7월 한국 민족자주통일연맹을 결성하였다.
한국 민족자주통일연맹은 1973년 8월 결성된 한국 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해산되었다.
한국 민족자주통일연맹은 민족 자결의 원칙, 평화적 방법, 민주주의적 수속(手續)이라는 이론적 주장을 실천 운동으로 전개하면서 박정희 정권 퇴진, 한일 협정 반대,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 반대와 연계하여 민족 통일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에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은 한국 민족자주통일연맹에서 발행한 통일조선연감이 적성이라는 이유로 배척하였다. 나아가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은 한국 민족자주통일연맹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의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다는 것을 문제삼아 이적 단체로 규정하였다.
한국 민족자주통일연맹은 재일 한인 사회에서 제3의 통일 세력으로, 재일본대한민국민단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간의 대립을 종식시켜 공존의 장을 형성하고 화합과 교류를 도모하면서 조국통일을 모색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