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통일협의회

원어 항목명 民族統一協議会
한자 民族統一協議會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일본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73년
원어 항목명 民族統一協議会
정의

1972년 7월 4일 일본에서 이희원, 김금석, 배동호 등 재일 한인들이 결성한 민주화 운동 단체.

개설

1972년 7월 4일 남북공동성명과 10월 유신의 선포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내부의 갈등을 가속화시켰다. 이 시기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은 재일대한청년단과 한국학생동맹을 산하 단체에서 배제하였으며, 재일대한청년단 위원장 곽동의를 제명 처분하였다. 이에 대해 비주류는 박정희 정권을 지지하는 집행부와 본격적으로 대립하였다. 박정희 정권이 10월 유신을 발표하자 집행부는 1973년 유신 체제를 적극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였고, 이탈한 비류주는 반대를 주장하였다. 이 비주류에 김재화와 김대중이 동참하면서 새로운 조직을 모색하였다. 이를 계기로 자주적 통일 운동을 추진하기 위해 ‘재일본대한민국민단정상화유지간담회’를 조직하였던 이희원, 김금석, 배동호민족통일협의회를 결성하였다.

설립 목적

민족통일협의회는 한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하나의 문제로 간주하고, 완전한 민주화는 통일을 최후 목적으로 하였다.

변천

민족통일협의회는 1973년에 결성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과 관련하여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내부에서는 박정희 정권 지지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 간의 분열과 대립이 발생하였다. 민족통일협의회는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하나의 문제로 인식하고, 완전한 민주화는 통일이 되어야 완전히 이루어질 수 있다는 판단하에 박정희 정권 타도 운동, 민주 정권 수립, 미군 철수, 남북 연방제에 의한 점진적 통일을 주장하면서 대한민국 민주화 세력과 연대하여 민주화 운동을 전개하였다.

의의와 평가

민족통일협의회 결성은 재일 한인 중심의 자주적 통일 운동의 전환점이 되었다.

참고문헌
  • 정용하, 「재일한인 통일운동에 나타난 연대·네트워크」(『한일민족문제연구』12, 한일민족문제학회, 2007)
  • 지충남, 「재일 동포 사회의 통일 운동: 민단, 조총련, 원 코리아 페스티벌을 중심으로」(『한국민족연구논집』64, 한국민족연구원, 2015)
  • 지충남, 「재일 동포 사회의 ‘제3의 민족 통일 운동’ 고찰」(『한국동북아논총』18-4, 한국동북아학회, 2013)
  • 지충남, 「재일 한인 사회의 통일 운동 고찰: 한통련을 중심으로」(『한국민족문화』61,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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