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在日韓国青年同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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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在日韓國靑年同盟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
시대 | 현대/현대 |
설립 시기/일시 | 1960년 10월 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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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항목명 | 在日韓国青年同盟 |
원어 주소 | 日本國東京都千代田区神田佐久間町3-21 相原ビル4F |
영문 주소 | Tokyo-to, Chiyoda-ku, , Kandasakuma-cho 3-21, Aihara B/D 4F |
전화 | 0120-734-101 |
홈페이지 | http://hanchung.org |
1960년 10월 일본 도쿄도에서 설립된 재일 코리안 청년단체.
재일한국청년동맹은 국적과 상관 없이 16세부터 35세 사이의 재일 코리안 청년으로 구성된 단체로 조국의 완전한 통일과 독립을 위하여 설립되었다.
1945년에 결성된 조선건국촉진청년동맹[건청]이 1950년 재일대한청년단으로 개편되었다가 1960년 10월 재일한국청년동맹으로 재개편되었다. 1961년 5·16 쿠데타 지지 성명을 낸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 집행부에 대하여 민정 이관 요구를 발표하고, 4·19혁명의 정신을 이어가고자 했으나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 중앙 본부의 압박으로 1962년에 곽동의 초대 의장이 권리 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후 한일 법적 지위 요구 관철운동,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 민주화 운동, 7·4남북 공동 성명 지지 운동을 전개하였고, 1972년 7월에 재일한국청년동맹은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 산하 단체에서 제외되었다. 1973년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를 결성하여 김대중 납치 사건을 규탄하고 1970년대에는 한국의 반독재 민주화 운동과 연대하여 활동을 이어갔다. 1980년에 광주 민주화 운동 후 재일한국청년연맹, 한국 사회 운동 단체와 연대하여 반군정치 운동과 반전 반핵 운동을 이어갔다.
1990년대에는 한국의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여 범민족 대회에 참가하였고, 2000년 6·15남북 공동 선언을 지지하며 일본 각지에서 6·15남북 공동 선언을 홍보하는 연극과 마당극 등을 올렸다. 2004년에 한국민주통일연합 고국 방문단의 일원으로 한국을 방문하면서 2005년에는 원국적에 상관 없이 실질적으로 자유 왕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우리민족청년 금강산 영춘 행사와 한국에서 국내 순회 강연회 등에 참가하며 남북을 오가는 교류 활동을 하였다. 한편, 2000년대에 들어서 일본이 우경화됨에 따라 일본 국내에서 일어나는 재일 외국인 차별 움직임과 일본의 군국화에 반대하는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였다.
현재 우리말[한국어]교실과 한반도의 지리·문화·현대사를 학습하는 청년 세미나, 사물놀이·민요·전통 무용 등 한국의 전통문화를 연습하여 발표하는 재일한국청년동맹 문화 마당 등의 활동을 정기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한편 코리안 청년 포럼, 촛불 운동, 아리랑 프로젝트, 피스 캠페인 등 사회 운동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도쿄 지요다구[千代田区]에 있는 재일한국청년동맹 중앙 본부를 중심으로 도쿄, 가나가와[神奈川], 아이치[愛知], 미에[三重], 교토[京都], 오사카[大阪], 효고[兵庫], 히로시마[広島]에서 지방 본부가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