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한국·조선인 대학교원간담회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일본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72년 10월
성격 시민단체
설립자 서용달
정의

1972년 10월 국·공립 대학의 외국인 교원 임용 실현 등을 목적으로 결성한 재일 코리안 대학 교원들의 단체.

개설

1933년 부산에서 태어나 1942년 도일한 서용달은 1950년대 초 오사카시립대 상학과에 입학하였다. 입학 후 일본 유경회 장학금을 신청하였으나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수령하지 못하였다. 재일 코리안도 엄연히 세금을 내는데 장학금을 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투쟁을 벌였지만 결국 한푼도 받지 못하였다. 대학 4학년 때인 1956년에 대학원에 다니던 선배들과 함께 ‘한국학생동맹 관서 지방동맹 장학금’을 만들었다. 이 장학금은 재일 코리안 사업가들로부터 기금을 받아 재일 코리안 학생들에게 소액을 지급하는 형태였다. 이후 고베대학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지만 재일 코리안의 취직이 제한적이던 시기여서 일자리를 얻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지도 교수는 서용달에게 일본 국적을 취득하면 좋은 대학에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고 권유하였지만 서용달은 이를 거부한 채 한국 국적을 유지하였고, 1963년 아오야마 카구인 대학에서 전임 강사가 되었다. 이후 1971년에는 같은 대학 교수로 취임하였지만 재일 코리안의 취업 상황은 이 시기까지도 여러 제약을 받고 있었다. 일반 기업체는 물론, 대학에서도 이런 상황은 동일하였다. 서용달은 같은 처지에 있는 재일 코리안을 규합해 재일한국·조선인 대학교원간담회를 창설하였고, 대표 간사직을 맡았다. 서용달은 그 외에도 일본에서 재일 코리안에게 행해지는 다양한 차별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인권 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쳤다. 참여 멤버 중 1957년 밀항으로 일본에 입국하였던 김동훈은 교토대학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일본대학에서 일을 하면서 이 운동에 참가하게 되었다. 김동훈은 오사카와 나라현의 지방 정부에서 인권 관계 심의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재일 코리안 대학 교원에 대한 차별적인 취업 상황에 대해 투쟁 운동을 벌였다.

설립 목적

서용달이 재일 코리안의 국·공립 대학 외국인 교원 임용을 위해 재일 코리안을 규합해 설립하였다.

변천

국·공립 대학의 외국인 교원 임용 실현 등을 위해 1972년 10월에 결성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84년 재일한국·조선인 대학교원간담회는 ‘재일한국·조선인 아동·학생에게 민족 교육의 보장을 요구하는 심포지엄’을 개최하였고, 심포지엄의 실행 위원회가 주도하여 민족교육촉진협의회가 결성되었다. 민족 교육 관련 단체가 공동으로 참가한 민족교육촉진협의회는 ‘모든 동포에게 민족 교육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활동하였다.

의의와 평가

재일한국·조선인 대학교원간담회의 노력의 결과로 1986년 국·공립대 외국인 교수 채용 특별 조치법이 의회를 통과하였고, 이후 재일 코리안 교수들의 임용폭이 확대되었다. 한편 재일한국·조선인 대학교원간담회민족교육촉진협의회의 결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참고문헌
  • 서용달, 『다문화공생 지향의 재일 한조선인』(서윤순 옮김, 문, 2012)
  • 『定住外國人と國公立大學一敎員任用差別の撤廢を訴える』(僑文社, 1977)
  • 日高六郞·徐龍達, 『大學の國際化と外國人敎員』(第三文明社, 1980)
  • 徐龍達, 『アジア市民と韓朝鮮人』(日本評論社,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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