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한친선협회

원어 항목명 日韓親善協会
한자 日韓親善協會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일본 아키타현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61년
개칭 시기/일시 1979년 6월 18일
원어 항목명 日韓親善協会
정의

1961년 일본 아키타현에서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친선을 도모하기 위해 결성한 단체.

설립 목적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친선 도모를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1961년 아키타[秋田]현에서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친선을 도모하자는 취지로 처음 결성되었고, 이후 15개 현에서 결성되었다. 1970년대 한국에서는 김대중 납치 사건과 민청학련 사건, 인혁당 사건 등 박정희 독재 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반민주적 행위가 이어지면서, 일본 내에서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여론이 높아졌다.

이런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이 주도해 일본인 측의 조직화를 강화하였다. 전국 조직들을 통합하기 위해 1976년 5월 10일에 일한친선협회 전국연합회가 결성되었고, 이듬해인 1977년 1월에 도쿠시마[徳島]에서 전국친선협회 결성이 완료되었다. 발족 당시 중앙회 고문은 일본 전총리였던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회장은 1965년 한일 회담에서 일본 대표로 참석했던 시이나 에쓰사부로[椎名悦三郎] 전 외무대신, 부회장으로 가스가 잇코[春日 一幸], 마치무라 긴고, 후쿠다 쓰네아리[福田恒存] 등 일본 정관계와 문화계의 거물들이 참여하였다. 지방의 간부들도 자민당의 정치가나 관료, 경제인 등으로 구성되었다.

한편 1977년 11월에는 한국에서 카운터파트 단체로 한일친선협회가 결성되었고 당시 국회의원이던 김종필이 단체의 회장을 맡았다. 한국에서 단체가 결성되자 일본 측에서 시이나 에쓰사부로를 필두로 100여 명의 대규모 인원이 한국 측의 결성 대회에 참석해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과 면담하였다. 1979년 6월 18일에 일한친선협회 중앙회로 개칭하였다.

의의와 평가

참여 인사의 면면이나 활동 내용을 보면 순수한 민간 단체라기보다 보수적 색채가 강하고 정치적 의제를 염두에 둔 교류 단체에 가깝다. 하지만 한국에서 민주화가 진전되고, 재일본대한민국민단도 이에 발맞추어 변화의 추세를 보이자 정치적인 면모는 점점 탈색되고 문화적 교류와 경제적 협력 등 양국간의 우호를 증진하고 협력을 강화하는 방식의 단체로 성격이 변화하였다.

참고문헌
  • 『한일 간 풀뿌리 교류와 국가 친선』(제이앤씨, 2013)
  • 福田之保, 『日韓民間交流史』(西東京日韓親協会連合会,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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