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無産者診療所 |
---|---|
한자 | 無産者診療所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일본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30년 |
---|---|
원어 항목명 | 無産者診療所 |
성격 | 의료기관 |
1930년대 이래 일본 각지에 세워져 재일 조선인을 비롯한 일반 대중에게 저렴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던 진료소.
무산자진료소[無産者診療所]는 일본의 사회주의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던 1920년대 말과 1930년대에 노동자와 일반 대중들을 위해 세워진 진료소를 의미한다. 무산자진료소는 의료비가 저렴하면서도 안심하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으로 대중들의 환영을 받았다. 무산자진료소 중 상당수의 진료소는 재일 조선인이 설립에 관여한 것이 확인되었다. 재일 조선인이 설립한 것 중에 1931년 오사카시[大阪市] 기타구[北区] 요시야마정[吉山町]에 세워졌던 오사카 조선무산자진료소는 재일 조선인을 위해 세워진 곳이라는 점이 특이할만한 사항이다. 당시 일본에는 조선에서 건너온 재일 조선인들이 급증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일본 국내에서는 조선어가 가능한 의사와 간호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으로 조선인들은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쉽사리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였다. 오사카 조선무산자진료소는 의사와 간호사가 모두 조선인이었으며, 조선어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오사카 조선무산자진료소의 의사는 정구충(鄭求忠)으로 후에 한국 결핵 협회장을 지냈다. 오사카 조선무산자진료소의 운영은 다양한 조선인들의 협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일본 경찰 당국의 탄압으로 인해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다.
당시 재일 조선인을 비롯한 빈곤 계층 및 노동자들은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였다. 무산자진료소는 빈곤계층 및 노동자 계층에게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생겨났다.
1930년 일본 도쿄와 오사키[大崎]에 무산자진료소가 개설된 것이 그 기원이다. 이듬해인 1931년에는 일본 각지에 세워진 무산자진료소들이 뜻을 모아 일본무산자의료동맹(日本無産者医療同盟)이 결성되었다. 일본무산자의료동맹을 전신으로 하여 1953년 6월 7일에 ‘무차별· 평등한 의료와 복지의 실현을 지향하는 조직[無差別·平等の医療と福祉の実現をめざす組織]’으로 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회(全日本民主医療機関連合会)가 결성되었다. 현재 직원이 7만 명이 넘고, 일본 각지에 약 2천 곳에 달하는 사업소를 가진 일본 최대 규모의 의료 기관 조직으로 성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