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本名 宣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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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本名宣言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원어 항목명 | 本名 宣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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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한인이 통명[일본식 이름]이 아닌 한국어 본명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고자 했던 실천운동.
일제 강점기 말기 조선인들은 강제적으로 창씨개명을 해야 했지만 재일 한인 중에는 자발적으로 일본명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일본에서 장기간 거주한 재일 한인과 재일 중국인 등은 일본 국내에서 사용하는 통칭명(通称名), 혹은 통명(通名)이라는 일본식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법적 근거는 없으나 일본 법무성 입국관리국에서는 편의를 위해 외국인 등록증명서에 본명 외에 통명을 병기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하지만 재일 코리안의 통칭명은 일제 강점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고, 일본 사회에서 차별을 덜 받기 위한 도구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 간사이 지역 교사들이 1960년대부터 본명 선언이라는 실천 운동을 시작하였다. 본명 선언 실천은 간사이 지역의 부락해방운동과 관련이 있다. 부락의 차별 문제가 대두되면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재일 한인에 대해서도 일본인 교사들이 주목하게 된 것이다. 교사들에 의해 시작된 실천은 재일 한인이 민족명으로 생활하게 되는 중요한 전기를 마련하였다. 뿐만 아니라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는 일본인 학생들에게 재일 한인 학우의 역사와 문화를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간사이 지역의 교육 현장에서 시작된 본명 선언은 사회 여러 영역에서 전파되었다. 1983년 민족명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취직 차별을 받은 박추자에 관한 영화 「이름-박추자 씨의 본명 선언」이 제작되었다. 하지만 본명 선언 실천에 대해 적극적으로 찬동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본명 선언이 민족적 정체성을 밝히는 중요한 사항이라고 인식되면서 민족명 사용을 주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민족명 사용을 주저하는 사람들은 민족명을 일본식으로 읽거나 아예 일본명을 쓰기도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에 따른 것으로 강제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는 사회를 목표로 하는 본명 선언의 의의는 이름을 다양하게 부르는 방식을 이끌어 낸 원천이 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