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路線轉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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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路線轉換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원어 항목명 | 路線轉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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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한덕수의 연설에서 유래한, 재일 조선인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해외 공민으로 보는 주장.
1949년 재일조선인연맹의 강제 해산 이후, 해산에서 제외된 재일본조선해방구원회와 민주여성동맹, 재일본조선학생동맹 등이 중심이 되어 재일 조선인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단체로 1951년 재일조선통일민주전선[민전]이 발족하였다. 하지만 재일조선통일민주전선은 일본 공산당 지도 아래 과격한 일본 혁명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일본 공산당 내부에서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1955년 3월 재일조선통일민주전선 제4회 중앙위원회에서 한덕수가 ‘재일 조선인 운동의 전환에 대해서’를 연설하였는데 연설에서 노선 전환이 유래되었다.
재일 조선인 운동은 1930년대 이후 일본 공산당의 지휘를 받아 일국일당의 원칙 아래 독자적인 운동 조직은 해소·통합되었다. 재일조선인연맹 해산 이후 조선인 조직은 한국 전쟁 중에도 일본 공산당 중앙에 설치된 민족대책부[민대]의 지도에 따랐다. 하지만 재일 조선인을 일본의 소수 민족으로 간주하는 민족대책부의 노선과 북한과의 연대를 주장하는 민족파는 의견이 대립되었다. 한덕수는 당시 민족파의 중심 인물로 조선노동당과의 연대하에 재일 조선인을 공화국의 해외 공민으로 규정하고자 하였다. 한국 전쟁이 끝나고 동아시아 혁명의 기운이 퇴조하자 일본 공산당 내에서는 주권 존중과 내정 불간섭을 원칙으로 하는 평화 공존의 흐름이 나타났다.
이 시기에 북한 남일 외무장관이 성명을 통해 재일 조선인을 해외 공민으로 인정하였고, 한덕수의 연설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연설 이후 심한 반발이 일어났지만 결국 민족대책부 간부의 자기 비판과 재일조선통일민주전선의 발전적 해소를 하기로 결정되었고, 6월 25~26일 이틀에 걸쳐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결성 대회가 열렸다.
노선 전환으로 인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와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이라는 두 민족 단체가 본국 정부의 지도와 의도에 따라 대치하는 재일 코리안 사회를 형성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