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朝鮮人学校閉鎖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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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朝鮮人學校閉鎖令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시행 시기/일시 | 1948년 1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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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항목명 | 朝鮮人学校閉鎖令 |
1948년 재일 한인이 창건한 민족 학교에 대해 연합군 최고사령부[GHQ]와 일본 정부가 내린 ‘학교 폐쇄’ 명령.
일본 패전후 재일 조선인이 창설한 민족 학교에 대해서 연합군 최고사령부[GHQ] 및 일본 정부는 ‘학교 폐쇄’를 명령한다.
「조선인학교 폐쇄령」의 배경에는 당시 동아시아 국제 정세의 변화를 들 수 있다. 당시 조선에서는 민족 해방 투쟁의 열기가 높아지고 재일 한인 역시도 민주적 민족적 자각이 고양되어 갔다. 연합군 최고사령부[GHQ] 및 일본 정부는 재일 한인 민족 교육을 교육 문제가 아닌 치안, 정치의 문제로 여겼다. 민족 교육은 식민지 지배국이었던 일본에 대한 반일 교육으로, 나아가 그것은 필연적으로 반미 교육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억압 정책이 강화되었다. 1948~1949년의 2차에 걸쳐 ‘학교 폐쇄’가 강행되었다. 탄압의 의도는 조선인 학교 재적 생의 일본인 학교로의 전학을 강화하고 동화 교육을 관철하는 것에 있었다. 당시 조선인 학교의 조직적 경영적인 기초를 담당하고 있었던 재일조선인연맹을 해체할 의도도 있었다. 이것에 재일 한인들은 전국적 규모로 격렬하게 반대 저항 운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오사카 효고[兵庫]지역의 투쟁은 격렬하여 16살의 소년이 사살되는 참사로 이어졌다. 이 투쟁이 바로 한신 교육투쟁[阪神教育闘争]이다. 투쟁 결과 몇몇의 조선인 학교는 공립 조선인 학교로 남게 되었으며, 많은 재일 한인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일본 학교로 분산 입학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