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南日声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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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日聲名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공포 시기/일시 | 1954년 8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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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항목명 | 南日声名 |
1954년 8월 30일 북한의 외상(外相) 남일이 재일 조선인에 대한 지도권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있음을 발표한 성명.
‘남일 성명’은 1954년 8월 30일 재일 조선인을 ‘공화국 공민’이라고 하면서 일본 정부의 재일 조선인에 대한 억압 정책에 항의하여 발표한 조선인민공화국 외상 남일(南日)의 성명을 말한다. 남일 성명은 “조국 통일을 위한 투쟁, 생활, 민족 교육 등으로 재일 조선인의 권리를 보장하라”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남일 성명은 재일 조선인 운동의 노선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1955년 5월 재일조선통일민주전선의 해체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의 결성이 이루어졌다.
1953년 7월 27일 한국 전쟁에 대한 정전 협정(停戰協定)이 체결된 이후 동아시아 정세의 변화는 일본 공산당 민족대책부의 지도 아래 실력 투쟁에 돌입한 조국방위위원회와 재일조선통일민주전선의 노선 재검토를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1954년 6월에는 중국·인도 간에 평화 원칙의 공동 성명이 나와 주권 존중과 내정 불간섭 등을 원칙으로 하는 평화공존의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내외 정세의 변화를 배경으로 등장한 북한 외무장관 남일의 성명은 일본 정부를 비난하면서도 일본 정부가 일본 국민을 대표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주권을 존중하는 북한 정부의 입장을 밝히며, 동시에 북한 정부만이 재일 조선인의 이익을 대표한다고 표명했다. 즉 이것은 일본 공산당이라는 외국 정당 아래 일본의 민주 혁명을 목표로 했던 재일조선통일민주전선의 노선을, 주권 존중과 내정 불간섭의 입장에서 부정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남일 성명에 더해 1954년 11월에 방일(訪日)한 중국 홍십자회(紅十字會)[중국의 적십자회] 대표의 “외국의 정치 분쟁에는 절대로 관여하지 않는다.”라는 발언으로 인해, 일본 공산당도 1955년 1월 1일 『아카하타[赤旗]』를 통해 “재일 조선인에게 일본 혁명을 거들게 하려고 의식적으로 지도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이다.”라고 방침 전환을 분명히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방침 전환을 “정세의 발전에 호응하는 전술적 전환”이라고 본 민족 대책부파와 “민대파 간부의 근본적인 지도의 오류”라고 본 한덕수(韓德銖) 등 민족파의 대립이 표면화되었고, 1955년 5월 재일조선통일민주전선 해체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결성에 이르는 노선 전환은 후자의 주도로 실현되었다.
재일 조선인에 대한 지도권이 북한에 있다는 내용으로 발표한 남일 성명은 1955년 5월 한덕수의 주도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가 발족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