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령선인

원어 항목명 不逞鮮人
한자 不逞鮮人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일본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원어 항목명 不逞鮮人
정의

1910년대에 일본 경찰이 일제의 조선 지배와 일제의 질서에 저항하는 조선인을 위험시·적대시하거나 혹은 폄하하는 의미로 사용한 단어.

개설

‘무뢰한’ 또는 ‘괘씸한 조선인’이란 뜻으로, 엄밀한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니며, 수상쩍고 자기들에게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일본인들이 주관적으로 판단한 조선인을 지목해서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 특히 독립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던 시기에 일본인들 사이에서 자주 사용되었다. 일반 일본어 상업 신문 지면의 표제에 이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시기는 1920~1930년대인데, 특히 1920년대 전반기가 두드러진다. 이는 1919년 3·1 운동 및 이후 독립운동이 활발해지고, 재일 조선인이 급증한 데에 따른 것이다. 그리고 관동 대지진 당시에는 언론이 유언비어를 근거로 보도하면서 ‘불령선인 내습’ 등의 표제가 난무해 일본인 민중이 재일 조선인을 학살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1922년 11월 재일 아나키스트인 박열(朴烈)흑우회(黑友會)를 조직하여 월간 잡지 『후데이센징(太い鮮人)』을 간행했다. 박열은 발간 취지문에서 “일본 사회에서 혹독하게 오해를 받고 있는 ‘불령선인’이 과연 앞뒤를 가리지 않고 암살·파괴·음모를 꾀하는 자인가, 아니면 어디까지나 자유를 향한 열정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인가.”를 알리기 위해 잡지를 발간한다고 밝혔다. 또 경찰들이 자신을 괘씸한 조선인이라 비하한 것에 대한 불만의 뜻으로 제호를 잡았다고 기술하여 일본 제국에 대한 반항의 뜻을 표출하였다. 전시 체제기에는 국내의 민족적 갈등을 피하기 위해 ‘선인(鮮人)’이라는 단어 대신 ‘반도인(半島人)’이라는 단어가 장려되면서 신문 등에서도 ‘불령선인’을 운운하는 표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조선인을 스파이로 보고 경계를 당부하는 팸플릿의 제목에 이 단어가 등장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 사용이 근절된 것은 아니었다. 전후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참고문헌
  • 김명섭, 『한국 아나키스트들의 독립운동』(이학사, 2008)
  • 山田昭次, 『金子文子: 自己·天皇制國家·朝鮮人』(影書房,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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