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パチンコ産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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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원어 항목명 | パチンコ産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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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재일 한인의 경제 활동으로 성장한 대표적인 산업.
파친코 산업은 일본 간사이[関西] 지방 큐슈[九州]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파친코[유기업] 산업은 1927년경에 시작되었는데 처음에는 대형 기업으로 움직이는 ‘카찬코’라는 것이었다. 또한 일본 ‘풍속 영업법’의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오락이었다. 일본에서 재일 코리안들이 파친코 산업을 독점하게 된 계기는 파친코 산업이 정식 산업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야쿠자들의 횡포와 간섭이 심했기 때문이다. 또한 재일 코리안들이 일본 기업이나 공무원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이 폐쇄되었기 때문에 현금의 흐름이 빠르고 소자본으로 영업이 가능한 파친코 산업에 눈길을 돌렸다.
재일 한인 기업 중 가장 큰 규모의 민족 산업으로는 파친코 산업, 야키니쿠 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외식 산업, 토목 건설업 등이 있다. 그 중에서 특히 재일 한인의 주요 산업으로 파친코 산업을 빼놓을 수 없다. 파친코 산업은 재일 한인의 대표적인 산업임과 동시에 민족 기간 사업이다. 파친코 산업이 재일 한인의 주요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소자본으로 기업 경영이 가능하고 자본 회전이 빨라 현금 장사가 가능했으며, 특별한 노하우나 지식 없이도 누구나 쉽게 창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재일 한인의 기간 산업인 파친코 산업이 일본에서 어떻게 출현하였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과 같은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게 되었는가? 재일 코리안 기업이라고 하면 파친코 산업을 꼽을 수 있는데 일본인들에게는 이미지가 그리 좋지 않은 산업으로 알려져 있다. 재일 한인들조차도 파친코 산업이 재일 한인의 민족 산업이라는 사실에는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한국의 가부장적 전통 사회보다 유교적 가치관에 의한 관존민비의 성향이 강했던 재일 한인들은 야키니쿠 산업이나 파친코 산업을 일종의 산업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파친코 산업은 일본 지하 경제로 인식되어 왔으며 매출액이 약 30조엔에 이르는 오늘날에도 이러한 인식에는 거의 변함이 없다. 그러나 파친코 산업과 같은 지하 경제가 대규모 산업으로 성장한 예는 찾아보기 드물다.
파친코 산업은 어떻게 재일 코리안의 거대시장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가? 원래 파친코 산업은 일본 간사이 지방, 큐슈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재일본조선인상공연합회’ 조사에 의하면, 파친코[유기업] 산업은 1927년경에 시작되었는데 처음에는 대형기어로 움직이는 ‘카찬코’라는 것이었다. 또한 일본 ‘풍속영업법’의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오락이었다. 처음 파친코 기기를 발명한 사람과 사업화한 사람은 일본인이었다. 일본 나고야에 사는 마사무라(正村)가 ‘마사무라게지’ 라는 파친코의 원형 모델을 제작하였다. 해방 전에는 파친코 기계가 스마트 볼과 같은 것이었는데 이것을 세워놓은 모양이 현재 사용되고 있는 파친코 기계와 매우 흡사하다. 해방 이후 별다른 오락이 없었던 당시 대부분의 재일한인들은 거리에서 10대~30대의 파친코기기를 가지고 소규모 영업을 시작하였다. 표면적으로는 오락 산업이었지만 실제로는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그 후 일본 공안당국의 공식 허가를 받아 점포 안에서 영업을 하게 되었다. 파친코 산업이 인기를 얻게 된 비결은 그 무렵 모터가 내장된 파친코 기기가 등장하여 기어 방식이었던 것이 센서로 작동하는 현재와 비슷한 크기의 소형 파친코 기기가 등장한 이후이다. 당시 일본 전국적으로 파친코 기기가 10만 대 정도 존재하였다. 그러나 현재 일본 전국 1만 7,000개 파친코 점포가 성업 중이며 그 중 재일 한인이 70%, 일본인이 20%, 화교가 10%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에서 재일 한인이 파친코 산업을 독점하게 된 계기는 파친코 산업이 정식 산업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야쿠자들의 횡포와 간섭이 심했기 때문이다. 또한 재일 한인들이 일본 기업이나 공무원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이 폐쇄되었기 때문에 현금의 흐름이 빠르고 소자본으로 영업이 가능한 파친코 산업에 눈길을 돌렸다. 파친코 산업은 해방 전후 혼란한 정국을 틈타 좁은 장소에서 시작하여 구슬의 보급이 힘들었기 때문에 구슬을 손으로 직접 쌓아올리거나 하나하나 손으로 집어넣어 게임을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또한 환금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게임에서 이기면 생활 용품이나 과자, 혹은 담배로 교환해 주었다. 그러나 고객들의 항의로 비합법적인 환금을 시작하면서 야쿠자들이 개입하게 되었다. 재일 한인들은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도 마땅한 직업이 없었기 때문에 파친코 산업에 매달린 결과, 현재와 같은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게 되었다. 파친코 산업은 아직 합법화 되지못해 경품 교환이나 환금 제도가 대신하고 있다. 이러한 환금 제도의 활성화가 파친코 산업을 성장시켰다고 볼 수 있다.
파친코 산업이 일본에서 누구나 즐기는 대중 오락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사회적 배경에는 일본이 경제 대국으로 부상함과 동시에 그에 상응하는 마땅한 오락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부응에 힘입어 파친코 산업은 일본 전국에서 남녀노소 누구나가 즐기는 대중 오락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현재 파친코 점포의 고객은 대략 하루 2,000~3,000만 명 정도로 젊은이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고객층도 다양하다. 파친코 산업이 거대 시장으로 성장하기까지에는 재일 한인들이 파친코 기기의 하드 면과 소프트 면을 끊임없이 연구해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재일 한인들이 과거 부정적인 이미지를 탈피시키고 건전한 오락으로 바꾸어 나가기 위하여 현대적인 감각을 살린 깨끗한 점포 만들기와 젊은 커플의 데이트 장소로 활용되도록 건전성을 살린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파친코 기기도 해마다 고객들의 취향과 기호에 맞추어 새롭게 개발해 나갔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파친코 기기의 등장은 1980년대 이후로 프리페이드 카드 도입과 사행성이 높은 카드 대응[CR]기종의 등장으로 도박성이 높아지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파친코 산업의 시장 규모가 30조엔에 달한 것도 1990년 전후 무렵이다. 당시 파친코 산업은 일본 최대 산업인 자동차 산업과 필적하는 매출액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이후 버블기의 과잉 투자와 무리한 확장에 의해 도산하는 점포가 속출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일본의 풍속 영업법과 환금 제도의 비합법화로 지금까지 일본 대기업의 투자가 거의 없었지만 최근에는 파친코 기계의 메이커로 참여하는 일본 기업들이 등장하였다.
현재 파친코 산업은 ‘다이나무’와 ‘마루한’이라는 양대 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다이나무’는 2001년 도야마 점포의 개업을 시작으로 전국 100개 점포의 확장을 달성했다고 보고한 바 있다. ‘다이나무’가 파친코 체인점을 시작한 것은 1988년경으로 불과 17년 만에 급성장하였다. ‘다이나무’는 2003년도 매출액이 7,090억엔, 경상 이익만도 181억엔으로, 파친코 업계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한창우가 설립한 ‘마루한’은 자본금이 3억 9,300만엔, 사원 3,456명, 2001년도 채용 실적 219명 중 9할 이상이 대졸자였으며, 매출액은 2000년 9월에 2,896억 7,516만엔, 경상 이익이 58억 5,095만엔, 파친코 점포 수가 79개라고 발표하였다. 2002년도에는 100개 점포를 확장하여 업계 2위로 부상하였다. ‘마루한’은 1957년 도쿄에서 커피숍과 레스토랑 산업을 선두로 볼링과 같은 다양한 오락 산업을 전개하여 현재는 파친코 산업의 중심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마루한’은 2006년 매출액이 1조엔, 200개 점포 확장을 목표로 급성장하고 있다.
파친코 산업은 대기업의 참여, 휴일 및 영업 시간 규제, 환금율의 규제 철폐 등 자유화에 의한 경쟁 과열로 중소 업체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분명한 것은 중소업체가 대형 체인점에 비해 자금과 인재 등 모든 면에서 열세이지만 그 중에서도 명확한 기업 비전이나 튼튼한 재정 기반을 바탕으로 꾸준히 성장하는 업체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파친코 산업의 생존 전략은 체인점 내 조직 관리의 표준화 및 합리화, 지방 밀착형 산업 정착, 재무 강화, 파친코 기기의 품질 관리 강화 및 신기종의 선견성 등을 들고 있다. 재일 한인 기업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시대의 부응에 맞추어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탄탄한 재정 기반과 경영 비전을 재구축하는 것이 당면한 시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