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北韓投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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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北韓投資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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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항목명 | 北韓投資 |
1984년 북한에서 외국 기업의 직접 투자를 유치하려는 합변법(合弁法)을 제정함에 따라 기업 유치 대상이 된 재일 한인 기업의 투자.
북한은 1970년대의 석유 파동 이후 무역 적자가 확대되고, 서방 진영에 대한 무역 대금 결제가 지연되는 등 경제난에 직면하면서 외화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1984년 합변법(合弁法)을 제정하여 외국 기업의 직접 투자를 유치하고자 했다. 이에 따라 가장 먼저 기업 유치 대상이 된 것이 일본에 있는 재일 한인 기업가들이었다.
재일 한인 기업의 북한 투자는 북한 기업과의 합변 회사(合弁会社) 형식으로 추진되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계열 재일 한인 1세들의 경우 대부분 남한 출신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이 철저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신봉자라기보다는 일본에서 민족 차별에 대한 반작용으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왜냐하면 1946년에 결성된 재일본조선인상공연합회는 가입 조건으로서 좌파나 우파의 정치 사상적 대립이 없었고, 당시 일본은 제3국인에 대한 차별과 단속을 강화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일 한인 기업가들은 조직적인 단결력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또한 이승만 정부의 재일 한인 ‘기민 정책’에 대한 실망, 박정희 군사 정권의 탄생은 역설적으로 김일성 정권에 대한 기대감으로 작용했다. 김일성 정권은 이승만이나 박정희 정권의 반일 정책보다는 같은 반일 정책의 입장을 고려하면서도 재일 한인에 대한 입장에서 포용 정책을 대대적으로 펼쳐 나갔다.
1955년에 결성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는 일본의 내정 불간섭과 준법 정신을 기치로 재일 한인의 권리 옹호와 미군 점령기에 접수된 조선 학교 되찾기 운동 등으로 중립적인 파벌을 끌어안으면서지지 세력을 확장하였다. 더욱이 당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민족 학교 운영에 필요한 재정적 기반이 약한 상황에서 김일성 정권은 대대적인 민족 학교 지원에 나섰다. 예를 들면, 김일성 정권은 1957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에 민족 교육 지원금으로서 약 3억엔을 송금한 바 있으며 2005년까지 151회에 걸쳐 약 455억엔 이상을 송금했다.
그러나 1973년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오일 쇼크로 인하여 1974년에는 북한의 무역 대금 결제가 지연되었다. 북한에서 1961년에 시작된 경제 개발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고, 1978년에 제2차 경제 개발 7개년 계획이 재개되었으나 경제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다. 이에 1982년 김일성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 애국상’을 제정하여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계열 재일 한인 기업의 투자를 촉구하였다.
1982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계열 재일 한인 기업가들이 김일성 생일을 계기로 공장 건설이나 자동차, 기계 등 약 50억엔 상당의 자금을 모아 북한으로 송금했다. 김일성은 약속대로 1억엔 이상의 기부자에게 사회주의 애국상을 수여했다. 또한 1984년에는 북한에서 외국인의 경영 활동을 보장하는 합변법을 제정했다. 1985년에는 재일조선청년상공인 대표단을 초청하여 합변 사업에 대한 취지를 설명하기도 했다. 1986년에는 재일본조선인상공연합회 결성 40주년 기념 감사단을 초청하여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계열 재일 한인 기업가들에게 애국적 합변 사업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였다. 당시 김일성은 합변 회사의 취지에 대하여 “사회주의 조국 발전에 기여하며 동시에 재일 한인 기업가의 지위를 확립시킨다.”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북한에서 1985년부터 1993년까지 합변법에 따라 북한 기업에 투자한 재일 한인 기업을 업종별로 살펴보면, 1970년대 남한 투자와 마찬가지로 북한 역시 섬유 공업과 경공업에 치중되었다. 결론적으로 남북한 당국이 재일 한인에 대하여 어떤 정책을 펼치느냐에 따라 투자 액수나 정권에 대한지지 방식에도 큰 차이가 있었다. 유사한 점은 남북한 정부 지도자 모두가 재일 한인 1세들에게 훈장 수여에 의한 애국심 호소로 적극적인 모국 투자 장려와 투자정책을 전개했으며 이러한 정부 정책들이 남북한 모두 초기 경제 발전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민주화의 진전과 비약적인 경제 성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북한은 북송사업과 경제 정책의 실패로 경제난이 가중되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였다. 더욱이 1980년대 이후 남북한 모두가 재일 한인 기업가의 애국심과 훈장 기대에 대한 투자 심리가 실질적인 사업 실패로 이어지면서 모국 투자에 대한 실망감과 배신감이 어느 때보다 강해졌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재일 한인 기업의 모국 투자에 대한 기대 심리는 현재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글로벌 시대 재일 한인 기업과 모국 기업 간의 상호 신뢰감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으로 상호 상생할 수 있는 전략적 정책 수립이 필요한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