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 공업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일본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정의

일본에서 재일 한인 기업가들, 특히 재일 제주인 기업가들이 오사카부와 효고현에서 많이 창업하던 제조업 분야.

개설

일본에서 고무 공업은 생산 설비가 간단하고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아 재일 한인 기업가들의 창업에 의해 소규모 자본의 가내 수공업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재일 제주인은 오사카와 효고현에서 화학 공업, 피혁, 고무, 비닐 제품 등 고무 공업 제조 분야에 종사하는 비율이 높았다.

소규모 자본의 가내 수공업으로 출발

해방 이후 1948년 고무 공장은 제3국인, 한인들에 의해 급격히 성장하였다. 당시 재일 한인 고무 공장 수가 오사카 및 고베 부근에는 70개 이상, 관동 지방에는 24개 정도로 일본 전국에 103개 고무 공장이 존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재일 제주인의 경우 초기 고무 산업 관련 가내 수공업을 통해 재력을 쌓았으며 1949년 후반 일본 정부의 규제 강화로 대형 제조업체가 등장하면서 고무 공업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1945년 해방 전후 재일 한인의 업종별 현황을 보면 전체 재일 한인 기업가 836명 중 고무 160명, 식당 106명, 메리야스 91명, 금속 90명, 유지 가공 61명 등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경상도 출신은 194명이었으며 메리야스 56명, 식당 28명, 고무 16명, 금속 12명, 소자 가공 11명, 철공 10명 등으로 나타났다. 반면 재일 제주인은 고무 129명, 금속 51명, 식당 29명, 철조 24명 등에 종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 출신 기업인 많아, 고향 발전에 기여

1976년도 재일 제주인의 지역별 구성을 살펴보면 전체 801명 중 음식 122명, 금속 제품 70명, 유기업 61명, 고무 제품 58명, 플라스틱 제품 40명 등이었다. 제조업 부문에서는 고무 제품 58명, 플라스틱 제품 40명, 비닐 제품 31명, 화학 공업 17명 등으로 대부분 고무 공업 분야[146명]에 종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일 제주인은 오사카와 효고 등 긴키[近畿] 지역에서 금속, 고무, 플라스틱, 섬유, 비닐 등 오사카 지역 산업과 깊은 관련성을 가지고 있어서 자본을 형성하는 데 유리했다고 볼 수 있다. 1989년 재일 제주인의 관서 지역 업종별 분포를 살펴보면 제조업이 318명으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으며 정보 서비스 91명, 부동산 50명, 상사 도매 40명 순으로 나타났다. 당시 오사카 지역의 업종별 분포를 살펴보면 제조업이 301명[56.6%], 정보 서비스가 82명[15.4%], 부동산 47명[8.8%], 상사 도매 38명[7.1%] 등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재일 제주인은 오사카와 효고현에서 화학 공업, 피혁, 고무, 비닐 제품 제조 분야에 종사하는 비율이 높았다. 재일 제주인의 개인별 소득 신고 금액을 1990년과 1991년 기준으로 살펴보면 김봉근이 경영하는 천마가 일본 내 전체 신고액[126억 3400만 엔]중에서 44억 6200만 엔으로 1위를 차지하였으며 강충남(康忠男)이 2위, 강순찬의 평화산업은 3위, 평화고무는 7위 등 대부분 상위에 속해 있었다. 강충남은 고향 마을과 제주 지역 교육 발전을 위해서 화산초등학교 시설비[17만 5000원], 표선중학교 이설[60만 원], 화산초등학교 비품[112만 원], 표선상업고등학교 이설[5000만 원], 화산초등학교 급식소 신축[2300만 원] 및 시설[4200만 원] 등 공적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1990년대 도쿄 등지로 진출, 기술력 인정 받아

1997년 재일 한인 고무 제품 제조 회사 현황은 지역별로 사이타마현, 치바현, 나라현, 미에현 등에 각각 1개, 도쿄도 3개, 오사카부 11개, 효고현 18개 등 총 36개 기업이 설립된 것으로 나타났다. 1976년 재일 한인 고무 제품 관련 제조 회사는 58개가 설립되어 1997년에는 36개가 존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순찬은 36개 회사 중 2개 회사, 즉 평화와 평화고무공업을 운영하였다. 그 밖에도 기당 강구범은 1933년 도쿄에서 신천호모공업소를 창업하여 자전거 부품을 생산하는 고무 공장으로 성장시켰다. 1938년에는 일본 마그네슘 하청 공장으로 인정받았으며 신천창고와 임대맨션빌딩 등 계열 회사를 경영하였다. 1964년 도쿄 올림픽 수영 경기장에 신천 고무판 제품을 사용하면서 일본 일류 기업인 스미토모[住友] 화학고무와 직거래가 성사되고 기술력과 신뢰도를 인정받아 일본 전국에서 유명해졌다.

참고문헌
  • 고광명, 『재일 제주인의 삶과 기업가 활동』(보고사, 2013)
  • 『재일 제주인과 마이너리티』(경인문화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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