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韓国投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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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國投資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원어 항목명 | 韓国投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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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해방 이후 재일 한인 기업가들이 한국 경제 개발을 위해 투자한 경제적 활동.
재일 한인 기업가들은 한국 전쟁 기간 휴전 협정과 함께 처음으로 한국에 투자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재일 한인 기업가들의 한국에 대한 투자는 1963년 1월 서갑호의 방림 방직 설립과 함께 본격화되었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재일 한인 기업가들이 한국에 본격 진출하였다.
1953년 7월, 재일한국인상공회는 한국에 산업 시찰단을 파견하여 한국의 산업 상황이 어떠한지 파악했다. 이후 정부와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였다. 한편, 산업 시찰은 3차까지 지속되었다. 1956년에 재일한교생산품수출조합, 재일한국인무역협회, 재일한국인상공회무역부회 등이 설립되었다. 하지만 1959년 재일 코리안의 북한 송환 문제로 한일 관계가 악화되었으며, 재일 기업과 한국과의 경제 교류도 대다수가 단절되었다. 1961년에 등장한 박정희 정권의 3공화국은 공업화와 수출을 통해 국가 발전을 모색하는 대외 지향적인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계획하고 수립 추진했다.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재일 기업가들의 본국 투자 움직임도 점점 더 증가하기 시작했다. 본국 투자에 앞장선 기업인은 당시 방적왕으로 알려진 서갑호(徐甲虎)였다. 1963년 1월 서울 영등포구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여 방림 방직을 설립했다. 한국 정부도 재일 기업가들의 한국 투자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특히 1964년 8월에 조성한 서울 구로 수출 공업 단지에 재일 기업의 입주를 권장하였다.
재일 기업이 본격적으로 한국 진출에 착수한 것은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이다. 한국은 외자 도입 정책의 일환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문호를 개방하면서 재외 한인의 본국 투자를 장려했다. 행정적으로는 업종과 투자 금액 및 투자 비율 등의 제한을 완화했으며, 재외 한인들의 본국 투자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거기에 재일 한인 기업가들 역시 한국의 경제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적극 참여하였다. 1978년 한국 정부는 국교 수립 이후 재일 한국인 기업가에 의한 본국 투자 총액이 10억 달러를 넘었다. 일본을 포함한 외국인 투자 총액을 능가한 수준이었다. 대표적인 산업 분야에는 섬유, 기계, 전자기기, 전기, 금속 등의 제조 분야를 비롯하여, 넓게는 호텔, 금융과 같은 서비스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재일 한국인 기업인의 본국 진출은 단순히 경제 발전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첨단 기술과 선진적인 경영 방침과 기법들을 한국 산업계에 보급하여 한국 사회와 경제의 근대화에 큰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