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崔甲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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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甲龍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일본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904년 5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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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98년 1월 14일 |
추모 시기/일시 | 1977년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출생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남도 평양 |
원어 항목명 | 崔甲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한국자주인연맹 대표간사 |
1924년 일본으로 건너가 학생독서회를 조직하여 활동한 재일 조선인 독립운동가.
최갑용은 1904년 부산에서 태어났고, 황해도로 이주하였다. 1924년 11월 일본으로 유학하여 세이소쿠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현 세이소쿠학원고등학교]에서 공부하던 중에 흑우회(黑友會)와 교류하였다. 1923년 9월 1일 관동 대지진(關東大地震)이 발생한 직후 도쿄[東京] 시내에는 가건물이 즐비하였다. 지금의 도쿄 지요다구[千代田區] 진보정[神保町] 고서점가에는 사회주의 서적이 범람하였고 아나키즘 관련 서적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최갑용은 고이시카와구[小石川區][현 도쿄도 분쿄구[文京區] 서부]의 천도교회(天道敎會)에서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1927년 귀국 후 평양에서 관서흑우회(關西黑友會)를 조직하였다. 주요 회원은 최갑용을 비롯하여 곽정모(郭正模)·김병순(金炳淳)·송선택(宋善澤)·승도경(承道京)·양제로(楊濟櫓)·오치섭(吳致燮)·이성근(李盛根)·이시헌(李時憲)·전창섭(全昌燮)·채은국(蔡殷國)·최복선(崔福善)·한명호(韓明鎬)·황지엽(黃智燁) 등이었다.
1929년 8월 8일 관서흑우회는 임시 총회를 통해 11월 10일과 11일 이틀간 전조선흑색사회운동자대회(全朝鮮黑色社會運動者大會)를 평양에서 개최하기로 결의하였다. 이 시기 조선 공산당 조직과 무정부주의운동 진영 조직에 대한 일제의 탄압은 극에 달해 있었다. 대회 일자가 가까워져 각지에서 대표자들이 평양으로 모이기 시작하자 평양경찰서는 집회를 금지하였다. 노동 단체 동흥노동동맹(東興勞動同盟) 대표 유현태(柳玄台)가 평양역에서 체포되어 도쿄로 호송되었다. 관서흑우회의 이주성·승도경 등이 경찰처벌령 위반으로 구류 처분을 받고, 최갑용이 무직부랑자라는 죄명으로 구류 처분을 받으며 전조선흑색사회운동자대회는 무산되었다. 1972년 최갑용은 서울 진관사에서 정화암(鄭華岩)·이을규(李乙奎) 등과 함께 한국자주인연맹을 결성하였고 대표간사로 선임되었다. 최갑용은 1998년 1월 14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최갑용의 공로를 기리어 1977년 건국 포장, 1990년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