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高尊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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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尊伊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일본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896년 1월 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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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대한민국 경상남도 울산군 농소면 창평리 |
거주|이주지 | 일본 히로시마현 야마가타군 야스노촌 |
학교|수학지 | 대한민국 경상남도 울산군 농소면 |
활동지 | 일본 히로시마현 |
원어 항목명 | 高尊伊 |
성별 | 남 |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에 종사하였던 재일 조선인 항일 운동가.
고존이는 1896년 1월 2일 빈농(貧農) 집안에서 태어나 고향인 울산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0년대 20세 무렵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大阪], 교토[京都] 등지를 전전하면서 노동에 종사하였다. 1944년 2월 히로시마현[廣島縣] 야마가타군[山縣郡] 야스노촌[安野村]의 수력발전소 건설 공사 현장의 조선인 노무자 세와야쿠[世話役, 십장]으로 취업하였다. 공사 현장에는 집단이입(集團移入) 조선인 노무자와 일반 조선인 노무자가 800명 정도 있었다.
고존이는 1944년 10월부터 1945년 4월 사이 도쿠가와한바[德川飯場]에서 다수의 재일 조선인에게 종종 “이번 전쟁은 세계를 상대로 하고 있어서 전쟁이 계속되면 일본은 물자가 부족해져서 지게 되고 미국이 승리하게 될 터인데, 미국은 조선을 독립시켜 줄 것이다.”라고 얘기하였다. 그런데 공사장이 다른 데보다 작업이 많이 지연되고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일제 당국이 원인을 조사하면서 이른바 불량 조선인 세와야쿠와 한바가시라[飯場頭] 때문에 작업 능률이 저하되었기 때문이라는 소문을 입수하여 상세한 조사에 착수하였다. 고존이에 대해서는 히로시마현경찰부[廣島縣警察部]에서 조선독립운동 용의자라 하여 특별히 내사를 실시하였으며, 조사 내용을 정리하여 내무성 경보국장(警保局長) 및 히로시마지방재판소[廣島地方裁判所]에 별도로 보고하였다. 보고 이후 단지 조사에만 그쳤는지 고존이 등이 이후에 검거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