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을

원어 항목명 朴台乙
한자 朴台乙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일본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5년 4월 17일
원어 항목명 朴台乙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일본에서 재일 조선인 노동자를 위한 『조선신문』을 발간한 재일 한인 노동 운동가.

활동 사항

박태을은 1905년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부잣집에서 태어나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의 배재학당에 다녔다. 1925년 교육가가 되고자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日本]대학 사회과에 들어갔지만 바로 중퇴하고 노동자가 되었다. 1927년 5월경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재일노총] 산하의 도쿄 조선노동조합 북부지부에 가입해 쟁의부장이 되고, 1928년 6월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중앙의 상임위원, 조사부장에 취임하였다. 1928년 6월경 고려 공산청년회 일본부에 가입하고, 도쿄 혼조[本所] 제1야체이카에 소속되었다. 노동 운동에 종사하면서 공산주의에 공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8월에 시작된 조선 공산당 일본총국에 대한 탄압으로 검거 기소당하였고, 1931년 제2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판결받았다.

1934년 4월 출옥한 후 1935년 도쿄 고토[江東] 지역의 재일 조선인 친목 단체를 중심으로 활동가를 규합하면서 공장법 적용, 임금 인상을 내세워 활동하였다.

박태을김천해, 이운수 등 재일 조선인 노동 운동의 지도자이자 공산주의 활동가들과 협의해 재일 조선인 특히 노동자의 문화 향상과 사회적·계급적·민족적 자각을 환기시킬 것을 목표로 한글 신문 『조선신문』을 발간하기로 하였다. 『조선신문』은 1935년 12월 창간 준비호를 발행하고, 1936년 2월 정식으로 창간호를 발행하였다. 월 1회 약 4,000부를 배포하였다. 『조선신문』의 내용은 아동의 교육 문제, 도항 문제, 주택 문제, 차별 대우 문제, 취직[실업] 문제 등 당시 재일 조선인이 당면한 가장 절실한 문제들을 다루었는데, 창간호와 제4호는 발매 반포 금지처분을 당하였다. 박태을조선신문사의 영업 담당자로서 게이힌[京濱] 지역의 융화 친목 단체나 유학생 동창회를 중심으로 독자를 확대하는 데 주력하였고, 도쿄에서 11지국, 기타 7개 현에 10지국을 설립하였다. 그러나 1936년 7월 31일 탄압으로 다른 관계자와 함께 검거되어 1937년 6월 12일 기소당하였다.

참고문헌
  • 『社会運動の狀況』(内務省 警保局, 1931, 1936)
  • 『近代日本社会運動史人物大事典』(日外アソシエ−ツ, 1996)
  • 「朝鮮共産黨 日本總局事件 豫審終結決定書全文」1~19(『조선일보』, 1930. 8. 3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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