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원어 항목명 朴祥俊
한자 朴祥俊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일본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9년 6월 11일
원어 항목명 朴祥俊
성격 노동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에서 활동한 재일 조선인 노동 운동가.

활동 사항

박상준은 1909년 6월 11일 태어나 1927년 중국 동북 지방 간도의 영신[永新]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학업을 위해 일본 도쿄로 건너가 니혼[日本]대학 전문부 정치과에 들어갔지만 2학년 때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퇴학하고 자유노동자가 되었다. 이후 공산주의 사상을 품게 되어 1929년 3월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재일노총] 도쿄 조선노동조합에 가입해 서남지부 상임위원을 맡았는데,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이 조직을 해소하고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전협]에 합류한 이후에는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간토[關東] 자유노동조합 니시타마[西多摩] 지구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30년 700여 명의 조선인 노동자가 일하는 야마나시현[山梨縣] 국도 8호선 개수 공사 현장에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에서 박상준을 파견하였고, 박상준은 연말에 벌어진 여러 노사 분쟁 사건에 대응해 조선인 노동자 쟁의단 대표를 맡았다. 1931년 1월 조선인 노동자 250명을 모아 야마나시 토목건축노동조합을 결성하였고 나중에 서기장이 되었다. 8월 토목건축노동조합을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토목건축노동조합 야마나시 지부로 개편하였는데 조선인 조합원은 500명에 이르렀다. 후에후키가와[笛吹川] 개수 공사 쟁의 등 야마나시현 지방의 재일 한인들에 의한 노동 쟁의를 지도하며, 또한 일본 공산당의 강한 영향 아래에 있던 전국농민조합전국회의[전회파] 야마나시와 공동 투쟁을 전개하였다.

박상준은 젠하쿠[善白]철도공사쟁의로 탄압된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토목건축노동조합 나가노[長野] 지부를 재건하기 위해 1931년 10월 나가노현으로 파견되었다. 이후 활동의 중심을 나가노현에 옮기고 1932년 1월 일본 공산당에 입당, 젠하쿠철도쟁의, 단바지마[丹波島] 가교 공사 쟁의를 지도하였으며 재건된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토목건축노동조합 나가노 지부의 조선인 조합원은 200명에 이르렀다. 당황한 일본 관헌 당국에 의해 1932년 3월 13일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박상준 등은 검거되었다. 판결 결과는 알 수 없지만 한동안 감옥에서 지낸 뒤 학살당하였다고도 전한다.

참고문헌
  • 『社会運動の狀況』(内務省 警保局, 1931)
  • 岩村登志夫, 『在日朝鮮人と日本労働者階級』(校倉書房, 1972)
  • 『長野県史: 近代史料編』8-3(長野県史刊行会, 1984)
  • 『近代日本社会運動史人物大事典』(日外アソシエ−ツ,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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