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일

원어 항목명 金太一
한자 金太一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일본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32년
몰년 시기/일시 1948년
원어 항목명 金太一
성별
정의

1948년 한신 교육투쟁에서 일본 경찰이 발포한 총에 맞아 사망한 재일 한인 학생.

활동 사항

김태일은 일본 오사카부[大阪府] 후세시[布施市][현 히가시오사카시[東大阪市]]에서 태어났다. 6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가계를 지탱하기 위해 소학교 4학년을 중퇴하고 공장에 다니거나 담배를 팔면서 생활하였다. 이후 조선 중학에 다녔는데, 1948년 1월 24일 일본 정부가 각 도도부현[都道府縣] 지사에게 통달을 보내 “조선인은 지사의 인가를 받은 학교에 입학시켜야 한다.”면서 조선인 학교의 폐쇄를 지시하였다. 각지의 조선인 학교에 폐쇄 명령이 내려진 가운데, 김태일은 지시 사항에 반대해 4월 26일 오사카부청 앞에서 열린 조선인 학교 폐쇄 반대 인민 대회에 참가하였다. 오사카부청에서 조선인 대표가 오사카부 지사와 협상을 하는 와중에 오사카 군정부의 크레이그 대령이 협상 중지와 5분 이내 집회 해산을 명령하자 집회 참가자를 향해 소방대가 살수하면서 대회장을 포위하였다. 무장경찰대의 발포로 김태일은 후두부에 총을 맞고 후송되었으나 오사카 적십자병원에서 사망하였다. 김태일의 사망 당시 나이는 16세였다.

김태일의 장례식은 1948년 8월 3일 재일본조선인연맹[조련] 오사카 본부의 주최로 인민장으로 치러졌다. 오사카시 중심부 오테마에[大手前]의 마이니치[每日]회관에서 3,000명이 모여 장례식이 끝난 후 영정을 든 유족을 선두로 항의 시위행진을 벌였다. 한편, 오사카 검찰청은 가해자 경찰관을 불기소 처분으로 처리하였다. 김태일의 죽음은 조선인의 민족 교육 운동을 탄압에 대한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묘소

김태일의 유해는 재일 조선인을 포함한 일본의 사회운동 활동가를 합장한 도쿄 아오야마 레이엔[靑山靈園] 해방운동 무명 전사의 무덤에 매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 『재일코리안사전』(정희선 외 옮김, 선인, 2012)
  • 『해방신문』(1948.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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