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명

원어 항목명 崔善鳴
한자 崔善鳴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일본 도쿄도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9년
몰년 시기/일시 1945년
출생지 대한민국 강원도 양양군
활동지 일본 도쿄도
원어 항목명 崔善鳴
성격 아나키스트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일본 도쿄도에서 활동한 재일 한인 아나키스트.

활동 사항

최선명(崔善鳴)은 1899년 강원도 양양군에서 태어났다. 일본으로 건너간 시기는 확실하지 않다. 1922년 일본 천민 해방 운동 단체인 전국수평사(全國水平社)가 창립되고, 1924년 3월 개최된 제3회 전국수평사대회에 최선명간사이 조선인연맹[關西朝鮮人連盟]의 이사로 참석했다. 제3회 전국수평사대회에서 조선에 관한 의결 3개가 이루어졌는데, ‘조선인의 취급에 관해서 정부에 권고를 경고하는 건’과 관련해서는 직후에 도쿄로 상경하여 간토수평사[關東水平社]의 히라노 쇼켄[平野小劍]과 정부 협상에 임했다. 또 ‘조선의 형평 운동과 연락을 도모하는 건’에서 보면 수평사가 1924년 4월 형평사(衡平社)[백정의 신분 차별 철폐를 위해 경상남도 진주에 설립된 사회 운동 단체] 제2회 대회에 축사를 보내고 형평사가 그에 대한 답사를 보냈을 때 중개 역할을 했다. 이후에도 수평사의 도움을 받으며 다양한 집회를 개최했다.

최선명은 1924년 6월 2일 고순흠(高順欽), 김봉화(金奉和), 김태엽(金泰燁)과 함께 조선 무산자사회연맹 결성에 참여하고 일본인 아나키스트의 동인지 『조국과 자유』의 동인이 되었다. 피차별 부락에서 강습회 강사를 맡기도 하였다. 1930년 전후 ‘볼셰비키파’[마르크스주의파]에 대항해 기업 동맹의 운영에 참가하거나 비정치적인 협동조합 운동을 일으키고, 『협동조합연구』를 발간했다. 최선명은 1945년 4월 사망했다.

참고문헌
  • 오장환, 『한국 아나키즘운동사 연구』(국학자료원, 1998)
  • 『근대 지식으로서의 사회주의』(깊은샘, 2008)
  • 『재일코리안사전』(정희선 외 옮김, 선인, 2012)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