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鈴木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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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출생 시기/일시 | 190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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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52년 |
몰년 시기/일시 | 1993년 |
원어 항목명 | 鈴木一 |
성격 | 정치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외무성 출입국 관리청 장관 |
1950년 외무성 출입국 관리청 장관을 지낸 이후 일한친화회를 조직해 한일 교류에 힘쓴 정치가.
스즈키 하지메는 1901년 일본 해군 군인이자 주화파(主和派) 정치가였던 스즈키 간타로[鈴木貫太郎]의 아들로 태어났다. 스즈키 하지메는 1925년 고등문과 시험에 합격하여 관계에 입문하였는데, 패전 전에는 주로 농림행정과 관련된 업무를 주로 담당하였다. 1950년 외무성 출입국 관리청이 발족하면서 관리청 장관에 취임하여 1954년까지 출입국과 관련된 정책을 담당하였다. 스즈키 하지메는 1952년 일한친화회(日韓親和會)를 조직하고 기관지 『친화(親和)』를 발간하면서 한일 교류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일본의 패전 이후 간헐적으로 발생하던 한국인의 일본 밀입국이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 전쟁으로 인하여 급증하였다. 스즈키 하지메는 밀입국하는 한국인들을 보호하고 장학회를 만들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스즈키 하지메는 밀항 문제, 민족 차별, 한일간 마찰 등에 관심을 두고 재일 한인의 생활 안정 정책을 포함한 종합 대책을 수립할 것을 제안하였다. 스즈키 하지메의 노력의 일환으로 1952년 도쿄에 있는 한국 YMCA 건물에 사무실을 빌려 일한친화회를 만들었다. 일한친화회가 해산되는 1977년까지 스즈키 하지메는 전무이사, 회장을 역임하면서 재일 한인의 참정권 문제, 귀화 조건의 완화, 사회 보장 차별 철폐 등을 주장하였다. 특히 스즈키 하지메는 1971년 10월 일본 후생성이 한국인 유골을 송환할 당시 ‘비록 국적은 한국인이지만, 당시는 일본 군인으로 죽어 간 사람들이니 이번 송환에는 특별히 예를 갖추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진정서를 일본 정부에 제출하기도 하였다. 스즈키 하지메는 1993년 사망하였다.
스즈키 하지메의 작품으로는 1968년 『한국의 마음[韓国のこころ]』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