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성기

원어 항목명 石成基
한자 石成基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일본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2년
몰년 시기/일시 2001년 8월 30일
출생지 대한민국 경상북도 성주군
원어 항목명 石成基
성별
정의

1942년 일본군 군속으로 징용된 이후 부상당하여 일본 정부에 제소한 재일 한국인.

개설

석성기는 1922년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태어났다. 1942년 일본군 군속으로 징용되어 남태평양 마샬군도의 비행장 건설 등 진지 구축에 종사하였다. 1944년 미군기 공격에 의해 부상을 입어 오른쪽 어깨 15㎝를 남겨 두고 절단하였다. 상이군속으로 장해연금을 받고 있었지만 1952년 4월 30일 공포된 전상병자전몰자위족 등 원호법[戦傷病者戦没者遺族等援護法]에 의해 재일 한인들의 장해연금이 호적조항[국적]에 의해 연금 수급에서 제외되었다. 1952년 전 일본군 재일한국인 상이군인회를 조직하며 역대 정부에 호소해 왔다.

활동 사항

석성기는 1952년 4월 30일 공포된 전상병자전몰자위족 등 원호법에 의해 장해연금이 호적조항[국적]에 의해 재일 한인들은 연금 수급에서 제외되자 이후 1952년 전 일본군 재일한국인 상이군인회를 조직하며 역대 정부에 호소해 왔다. 1962년 9월 일본 후생성은 귀화를 조건으로 연금 수급을 통지하였지만 석성기는 응하지 않고 무연금 상태가 계속되었다. 1963년 일본 수상에게 직접 호소하기 위해서 수상관저로 차를 몰고 가기도 하였다. 1991년 1월 후생성 장관에게 장해연금을 청구하였지만 기각되었다. 1998년 9월 도쿄고등재판소에서도 기각되었지만 재판에서는 일본 국적자에 준하여 처우되도록 한 원호법의 국적 조항과 부칙을 개정하여 적용의 길을 여는 입법을 할 것과 전시에 부상 입은 자들에 행정상의 특별조치를 하도록 희망한다고 지적[2001년 4월 최고 재판소에서는 기각]하였다.

일본 국회는 특별입법 평화조약국적이탈자등 조위금 등 지급에 관한 법률을 2000년 6월 제정하여 생활 지원금을 포함하여 400만엔이 지급되도록 하였다. 하지만 석성기의 부상은 일본 국적자이면 1억엔 가까운 금액이 수령되었을 거라고 하였다.

1994년 뇌혈전으로 쓰러져 병상에서도 재일 한인의 전후 보상을 요구하며 소송하였으나 1심, 공소심, 최고 재판소에서도 패소하고 말았다. 2001년 8월 30일 요코하마 병원에서 심부전으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 일본의 영화감독 오시마 나기사[大島渚]석성기를 주인공으로 한 「잊혀진 황군[忘れられた皇軍]」이란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였다.

참고문헌
  • 『在日コリアン辭典』(明石書店,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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