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규

원어 항목명 曺良奎
한자 曺良奎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일본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8년
원어 항목명 曺良奎
성격 화가
성별
정의

1928년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출생하여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한 재일 조선인 화가.

활동 사항

조양규는 1928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났다. 1947년 진주 사범학교를 졸업한 후에 진주 시내의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고 교편을 잡으면서 남로당에 가입하여 정치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으로 전한다. 남로당에 대한 정치적인 탄압이 심해지자 1948년 2월 부산으로 도피하여 친구의 소개로 토성국민학교에서 근무하였다. 그러나 남한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해 학교에서 인공기를 게양하는 사건을 주도하면서 다시 도피 생활을 시작하였다.

1948년 일본으로 밀항하여 도쿄도[東京都] 후카가와[深川] 에다가와정[枝川町]의 조선인 부락에서 살았다. 1952년 무사시노미술대학[武藏野美術大學]을 중퇴한 후 사회주의 계열의 전람회인 일본 앙데팡당전[アンデパンダン展, salon des artistes indépendants, 프랑스 파리에서 1884년 이후 개최되는 자유 출품 미술전으로 심사도 없고 상도 없음]에 참여하여 작품을 출품하였던 조양규는 1953년부터 화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재일조선미술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1953년 다케미야 화랑[竹見屋画廊]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으며 1959년 무라마쓰화랑[村松畵廊]에서 두 번째의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1960년 니가타[新潟]에서 북송선을 타고 월북하였고 이후 체코슬로바키아에 1년간 유학을 다녀온 것 이외에 북한에서의 활동 사항은 확인되지 않는다.

저술 및 작품

조양규는 한국 전쟁으로 비극을 맞이한 민족의 삶을 「조선에 평화를」[1953]이란 작품에 녹여 표현하였고, 하층 노동자들의 삶을 그린 「창고」, 「맨홀」 연작을 발표하면서 1950년대 일본 리얼리즘 화단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참고문헌
  • 『재일코리안사전』(정희선 외 옮김, 선인, 2012)
  • 윤범모, 「조양규(曹良奎)와 송영옥(宋英玉): 재일 화가의 민족의식과 분단 조국」(『한국근대미술사학』18,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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