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崔定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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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定律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일본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918년 3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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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43년 10월 5일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출생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북도 경성군 |
원어 항목명 | 崔定律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1939년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한 재일 조선인 독립운동가.
최정율은 1918년 3월 19일 함경북도 경성군에서 태어나 1937년 3월 경성공립중학교를 졸업한 후 1939년 4월 일본 도야마현[富山縣] 공립 도야마고등학교 고등과 문과에 입학하였다. 일본 도항 당시 선박 내에서의 검열과 예비학교에 재학할 당시의 조선인에 대한 학교 당국의 차별 대우, 그리고 선배와의 교유를 통해 민족의식이 고양되었다. 창씨개명, 소학교에서의 조선어 과목의 폐지, 한글신문의 폐간 등 소위 내선일체 구현을 위한 정책에 대하여 민족적 감정으로부터 일본의 대 조선인 정책은 내선일체라는 미명 아래 조선 민족을 압박하고 고유한 문화와 민족성을 부정하는 비열한 정책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따라 조선 민족이 일본 통치의 불합리함과 조선 민족의 비참함은 오로지 일본의 조선에 대한 가혹한 정치에 기인한 것이라 확신하고 조선 민족의 참된 행복은 일본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조선이 독립하는 것이라 믿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으로 도야마고등학교, 도야마약학전문학교, 제4고교 등의 조선인 학생들과의 결속을 강화하였다. 1940년 이후 신입생 환영회와 졸업생 환송회 등에서 조선의 민족 해방을 위해 헌신할 것 등을 설파하였고 ,학교 당국의 입학 차별도 비판하였다. 1941년 12월 김재경 등과 함께 검거되어 1942년 12월 징역 2년, 집행 유예에 처해지고 퇴학당하였다. 1943년 일본 도쿄의 제일징병보험회사에 취직하였고, 1943년 10월 5일 조선으로 돌아가는 도중 미국 잠수함에 의해 배가 침몰되어 사망하였다.
최정율은 1995년 대한민국 건국 포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