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조

원어 항목명 高奉朝
한자 高奉朝
영문 Go Bongjo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0년
수학 시기/일시 1940년 3월
활동 시기/일시 1940년
몰년 시기/일시 1968년 6월 8일
추모 시기/일시 1992년
출생지 대한민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208번지
거주|이주지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시
활동지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시
원어 항목명 高奉朝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본관 제주(濟州)
정의

일제 강점기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시에서 계림동지회에 참여하여 민족의식 함양에 힘쓴 재일 한인 독립운동가.

개설

고봉조(高奉朝)[1920~1968]는 일본에서 활동한 제주도 출신 독립운동가이다. 오사카[大阪]에서 낮에는 핸드백 직공으로서 일하며 니혼대학[日本大學] 오사카 전문학교 특과 야간부에서 공부했다. ‘계림동지회(鷄林同志會)’를 조직하여 민족의식 고취에 힘쓰다가 옥고를 치렀다.

활동 사항

고봉조는 1920년 현재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208번지에서 태어났다. 1934년 7월 아버지가 머물던 일본 오사카에 건너가 1935년 4월 오사카 근처의 후세시[布施市] 성동(城東)상업 고등학교 야간부 1학년에 입학하여 3학년까지 수료하고 학비 문제로 자퇴하였다.

1940년 3월 니혼대학 전문부 특과 야간부에 입학한 고봉조는 1940년 5월 김봉각(金奉珏), 강금종(姜金鐘), 한만숙(韓萬淑) 등과 ‘흥아연구회(興亞硏究會)’라는 독서회를 만들었다. 이후 일본 국내 정세의 변화에 따라 흥아연구회는 니혼대학 오사카전문학교의 조선인 학생을 규합하여 비밀 결사인 ‘계림동지회’로 조직을 더욱 확대·강화하였다. 계림동지회는 동지 규합과 결속 강화, 마르크스주의와 삼민주의(三民主義) 연구를 중심 과제로 삼고 각자 책임을 분담하여 독립 의식의 고양에 힘썼다. 계림동지회의 항일 민족 운동은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고봉조는 1941년 2월 25일 14명의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1942년 11월 18일 오사카 지방재판소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 집행 유예 3년의 판결을 받았다.

고봉조는 1963년 10월 8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봉조의 공훈을 기려 1992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3(독립유공자사업기금 운용위원회, 1970)
  • 『近代日本社會運動史人物大事典』2(日外アソシエ-ツ,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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