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靑木定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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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일본 |
시대 | 현대/현대 |
출생 시기/일시 | 1928년 6월 2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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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2017년 6월 8일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4년 |
원어 항목명 | 靑木定雄 |
성격 | 기업인 |
성별 | 남 |
1943년 일본으로 건너가 택시 회사를 운영한 재일 코리안 1세 기업가.
아오키 사다오는 1956년 도산한 주유소의 경영권을 양도받았다. 당시 대금 후불이 일반적이었던 가솔린 도매업계에서 현금 거래를 시작하였다. 현금으로 저가에 가솔린을 매입하여 싸게 판매하고 동종업자들에게 전매하여 이윤을 높였다. 1960년대 택시 10대와 운전사 24명으로 택시업계에 진출하여 창업하였으나 운전사들의 무단 결근, 지각, 조퇴 등이 잦아 매출이 오르지 않았다. 원인은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는 택시 운전사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에 있었다. 아오키 사다오는 운전사 전용 사택을 짓고 기본급을 올렸으며, 운전사들에게는 걸맞은 서비스를 요구하면서 운전사 매너와 접객 스타일을 근본부터 바꾸도록 지시하였다. 접객 매너를 철저히 교육시켜 택시업계의 이미지 제고에 힘썼다. 이후 교토 시내의 택시 회사를 사들여 회사 규모를 확장하였다. 회사명을 MK택시로 바꾸고 교토를 대표하는 택시 회사로 성장시켰다.
일본 택시업계에서는 ‘동일 지역, 동일 운임’이라는 원칙이 있었다. 아오키 사다오는 택시업계의 일제 운임 인상 조치에 동조하지 않으면서 “MK택시는 운임 인상을 하지 않습니다.”라고 선언하였다. 1982년 오사카 육윤국[大阪陸運局]에 택시 운임 인하를 신청하였다. 오사카 육운국은 각하하였지만 MK택시의 문제 제기에 대해 언론들이 대서특필하여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1983년 아오키 사다오는 요금 인하를 지지하는 여론을 무기로 각하가 부당하다며 오사카 지방 재판소에 제소하였다. 1985년 오사카 지방 재판소가 ‘동일 지역, 동일 운임’ 원칙을 카르텔이라고 간주하고 인하 신청 각하 처분 취소를 명령하여 재판에 승소하였다. 판결에 불복한 운수성 육운국(運輸省陸運局)은 공소하였지만 운임 인하를 지지하는 여론의 동향을 무시할 수 없어 최종적으로 화해가 성립되었다. 2001년 재일 한국계 신용 조합인 긴키산업 신용조합의 회장에 취임하여 재일 금융 기관의 회생에도 힘썼다. 2017년 6월 8일 폐렴으로 사망하였다.
국위 선양과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한국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