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야 사다오

원어 항목명 古屋貞雄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일본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9년
몰년 시기/일시 1976년
원어 항목명 古屋貞雄
성격 정치가
성별
대표 경력 일본조선연구소 이사장
정의

1889년 일본 야마나시현에서 태어나 활동한 일본의 정치가, 변호사, 농민 운동가.

개설

1889년 12월 20일 일본 야마나시현[山梨縣] 히가시야마나시군[東山梨郡] 나나사토무라[七里村][현재의 고슈시[甲州市]]에서 태어났다. 1919년 메이지 대학[明治大學] 법과전문부 특과를 졸업하였다. 자유법조단의 변호사로 각지의 농민 운동을 지원하였으며, 조선과 타이완에서도 변호사 활동을 하였다. 1952년부터 연속 3회 중의원 의원직을 맡았다. 후루야 사다오는 1976년 1월 4일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후루야 사다오는 1921년 자유법조단의 변호사가 되어 각지의 농민 운동을 지원하였는데, 1924년 일본농민조합[일농] 간토동맹[關東同盟] 야마나시현연합회를 창설하고, 이사장에 취임하였다. 1925년 치안유지법위반 용의자로 몰렸던 박헌영 등 조선인 공산주의자를 변호한 일본인으로서는 후루야 사다오가 유일하였다. 조선과 타이완에서도 변호사 활동을 하였으며, 일본 패전 후 타이완에서 귀국하여 전국귀환자단체연합회를 결성하고, 자유법조단, 일본사회당에 참가하였다. 1952년 10월 제25회 중의원의원총선거에 사회당원으로서 출마하여 당선된 이후 1955년 2월 제27회 총선거까지 연속 3회 당선되었다.

1955년 후루야 사다오를 단장으로 하는 국회의원방조단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방문하여 김일성과 회견을 가졌다. 이때의 의뢰로 조선대학교 건설자금을 몰래 지니고 귀국해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중앙본부에 전달하였다. 이후 일본사회당 야마나시현지부 집행위원장, 전일농 중앙상임위원등을 역임하며 재일 한인 민족 교육 옹호, 조선대학교 창설에 힘을 쏟았다. 후루야 사다오는 1961년 일본조선연구소를 창설하고, 이사장에 취임하였다.

참고문헌
  • 『재일코리안사전』(정희선 외 옮김, 선인, 2012)
  • 「古屋貞雄理事長追悼特集号を編むに当って」(『朝鮮研究』153, 日本朝鮮研究所, 1976)
  • 『議会制度百年史: 衆議院議員名鑑』(大蔵省,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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