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姜相鎬 |
---|---|
한자 | 姜相鎬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919년 2월 6일 |
---|---|
몰년 시기/일시 | 1945년 5월 11일 |
추모 시기/일시 | 1977년 |
추모 시기/일시 | 1991년 |
출생지 | 대한민국 전라남도 순천군 해룡면 상삼리 |
원어 항목명 | 姜相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일제 강점기 말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강상호는 1919년 2월 6일 전라남도 순천군 해룡면 상삼리에서 태어났다. 일본 요코하마전문학교에 유학 중이던 1941년 도쿄 유학생 배종윤(裵宗潤), 원용학(元容鶴) 등을 만나 동지 관계를 맺었다. 이들은 일본 강점기 말 대표적인 민족 말살 정책이었던 창씨개명과 조선어 사용 금지 등의 식민지 정책에 반대하고 반대 운동을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조선이 독립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조선인 유학생들의 회합을 추진하고, 민족 문화 융화 지도자로서의 의식 고양에 힘쓸 것을 피력하였다. 1941년 10월 일본 경찰에 의해 활동이 발각되어 체포되었으나 1942년 9월 도쿄 지방 재판소에서 기소 유예로 풀려났다. 강상호는 졸업 이후에도 항일 운동을 이어 나갔다. 학교 후배인 이진과 학우 등을 결집해 1943년 2월부터 8월까지 조선 독립을 위한 회합을 10여 회에 걸쳐 개최하였다. 일제가 곧 패망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독립에 대한 준비를 추진하였지만 1943년 9월 11일 검거되었고, 1944년 9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요코하마 지방 재판소에서 징역 2년 판결을 받고 복역하였으나 심한 고문으로 인해 일본 패전을 3개월 앞둔 1945년 5월 11일 옥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강상호의 공적을 기리어 1977년 대통령 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