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河貴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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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貴鏞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일본 야마구치현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91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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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대한민국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
학교|수학지 | 일본 야마구치현 야마구치고등학교 |
원어 항목명 | 河貴鏞 |
성격 | 사회주의 운동가 |
성별 | 남 |
일제 강점기 일본 야마구치현에서 활동한 재일 조선인 사회주의 운동가.
하귀용(河貴鏞)[1912~?]은 주로 일본 야마구치현에서 활동한 재일 조선인 사회주의 운동가이다.
하귀용은 1912년 경상남도 마산부 오동동[현재의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에서 태어났다. 1927년 4월 일본에 건너갔고, 야마구치현[山口縣]의 야마구치고등학교[山口高等學校][현재의 야마구치대학(山口大學)] 문과 갑류에 입학하였다. 1932년 3월부터 야마구치고등학교 내 독서회에서 지도 책임자가 되었다. 1932년 9월부터 야마구치고등학교 Y동호회 상임 위원[배포부 책임자]이 되었고 이정구(李貞求) 외 4명의 일본인을 가입시키는 등 교내 좌익 조직을 지도하였다. 1933년 4월 21일 일본공산청년동맹에 가입하여 Y동호회를 해소하고, 일본공산청년동맹 야마구치고등학교 세포 조직을 확립하여 출판부 책임자가 되었다. 일본 재류 조선인을 규합하여 모임을 결성하고, 야마구치현 고조중학교[鴻城中學校][현재의 고조고등학교]의 조선인 학생을 규합해 독서회를 개최하였다. 1933년 11월 7일 야마구치고등학교 및 야마구치고등상업학교[현재의 야마구치대학 경제학부] 좌익 학생 일제 검거로 검거되며 야마구치고등학교 공산청년동맹 세포 조직은 붕괴되었다. 1933년 12월 28일 하귀용은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다. 예심 중 하귀용, 김인석(金仁錫), 최대권(崔大權)에 대해 야마구치 시내에 거주하는 조선인 학생 10명에 의한 구원 활동이 펼쳐져 의류, 서적 등이 전달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