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金原初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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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일본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92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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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항목명 | 金原初雄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1940년대 일본에서 비밀 결사를 조직해 활동한 재일 조선인 독립운동가.
가네하라 하쓰오는 1923년 경상남도 김해에서 태어났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지구의 건설 공장 현장에서 토공 노동자로 일하며 공부하였다. 1942년 9월경 일본 도쿄도[東京都] 시나가와구[品川區]의 숙소에서 재일 조선인들과 교류하게 되었다. 가네하라 하쓰오는 조선인의 진정한 행복은 조선 독립이며 조선의 청년은 독립운동의 지도자가 될 만한 실력을 키워야 하고 동지적 결합을 통해 상호 독립 의식을 고양해야 한다는 의견을 나누었다.
가네하라 하쓰오는 1942년 10월 나고야시[名古屋市]의 주쿄법률학교[中京法律學校][현재의 주쿄법률전문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나고야시로 이사하였다. 나고야시에서 독립운동에 뜻을 두고 있던 조선인들과 알게 되고 이후 동지적 결합을 굳건히 해 나갔다. 1942년 11월 나고야시 일대의 조선인 노동자들이 모여 독립운동을 추진하기 위한 비밀 결사 ‘와룡회’를 조직하였고 가네하라 하쓰오가 회장이 되었다. 조선 독립을 위해 서로 상부상조할 것, 근면·강건·예절을 중시하며 운동은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비밀리에 전개할 것을 회칙으로 규정하였다. 운동 방침으로는 와룡회장의 지령에 따라 내외의 동지가 일제히 궐기해 무력전을 전개해 독립을 달성할 것, 소속 직장에서 우수한 조선 청년을 발견하고 계몽하는 데 노력할 것, 독립 완수를 위한 기초 지식으로서 조선의 역사를 익힐 것 등을 내세웠다. 1943년 7월경까지 나고야시에 거주하는 조선인 학생 및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계몽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3년 7월 31일 이후 가네하라 하쓰오 외 9명이 검거되었다. 그리고 12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나고야 지방 재판소 검사국에 송국되었지만, 1945년 8월 15일 이후 석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