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李義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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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義錫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일본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90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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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평안북도 용천군 |
학교|수학지 |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
원어 항목명 | 李義錫 |
성격 | 노동운동가 |
성별 | 남 |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이후에도 일본과 한국에서 활동한 재일 한인 노동 운동가.
이의석은 1907년 평안북도 용천군[『매일신보』 1936년 4월 14일자에는 평안북도 정주(定州) 출생으로 기록]에서 태어나 1927년 일본 도쿄[東京]로 건너가 자유 노동을 하면서 니혼대학 전문부에 다녔다. 도쿄조선노동조합[東京朝鮮勞動組合]과 개편 조직인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在日本朝鮮勞動總同盟)에 가입하여 재일 조선인 노동 운동에 참여하였다.
1929년 말부터는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을 해소하고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日本勞動組合全國協議会)에 참여하는 해소 운동을 주도하였다. 이후 1930년대 초반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중앙위원,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조선인위원회 상임집행위원 등 간부로 활동하였으며, 1932년 일본 공산당(日本共産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 경찰에 검거되어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여러 차례 공소를 제기하였으나 결국 기각되어 옥살이를 하였다. 1936년 4월 만기 출옥한 후 조선으로 돌아왔다.
1945년 8·15 광복 후에는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朝鮮勞動組合全國評議會)에서 간부로 활동하였으며, 1948년 남북 단일 정부가 수립되는 과정에서는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산하 일반봉급자조합 대표 자격으로 조국의 통일을 위한 운동에 참여하였다.
이의석은 1929년 9월 이래 국제 노동 운동의 산업별 노동조합 조직 등 지도 방침 변화에 따라 김두용(金斗鎔), 김호영(金浩永) 등과 함께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을 해소하고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에 참여하기 위한 해소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를 위해 1929년 12월 24일 개최된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전국대표자회의에 참석하였다. 1930년 1월 한글로 「의회해산 선거투쟁 방침서」를 작성하여 각지에 발송하였으며, 1~2월 사이에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과 산하 각 지부는 해소의 과정을 밟았다. 1930년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이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에 가맹한 후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중앙위원 및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조선인위원회 상임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호쿠리쿠[北陸] 지방의 해소분담 책임자로도 활동하였다. 이와 같이 활동하다가 일본 경시청(警視廳)에 검거되어 1932년 6월 도쿄지방재판소[東京地方裁判所]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으나 보석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하지만 이러한 판결에 불복하여 이후 계속 공소(控訴)와 상고(上告)를 제기하였다.
석방 후 10~11월경 박상오(朴尙午)의 소개로 일본 공산당에 입당하여 북부지구 간다[神田] 야체이카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또한 이즈음 일본 공산당 도쿄시위원회 북부지구의 『아카하타[赤旗]』 배포 책임자로도 활동하였다. 니혼바시[日本橋], 교바시[京橋] 방면의 조직원으로 활동하다가 12월 23일 또다시 경시청에 검거되었다. 12월 26일 열린 지난 1930년 검거 사건에 대한 공소(控所) 재판에서 제기가 기각되자 다시 상고(上告)를 제기하였다. 하지만 1933년 2월 1일, 이의석이 일본 공산당에 입당한 사실이 밝혀서 결국 다시 검사국으로 송치되었고 3월 6일 기소되었다. 야마나시형무소[山梨刑務所] 등에서 옥고를 치르고 1936년 4월 12일 형 집행 만기(滿期)로 출옥한 후 곧바로 귀국길에 올라 4월 14일 서울로 돌아왔다.
1945년 8·15 이후 11월 개최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집행위원회에서 이의석은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중앙조직의 서기부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12월 신문화보급회(新文化普及會)에서 국민들 사이에 뿌리박혀 있는 일제정신(日帝精神)의 발본과 신문화의 보급을 위해 교육 도서를 출판하기로 하자 편집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조선일반봉급자조합(朝鮮一般俸給者組合) 위원장이 되어, 산업의 발전과 민족의 행복을 증진시키고 부녀와 소년을 위한 활동을 추진하였다. 1948년 1월 28일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산하 각 단일 노조 대표들이 모여 단일 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조국의 통일을 위해 UN위원단을 방문할 때 일반봉급자 대표로 참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