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趙夢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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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夢九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90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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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73년 12월 15일 |
출생지 | 대한민국 제주도 표선면 성읍리 |
원어 항목명 | 趙夢九 |
성격 | 노동운동가 |
성별 | 남 |
1908년 제주도에서 출생하여 일본 오사카부로 건너가 활동한 재일 한인 노동 운동가이자 민족 운동가.
조몽구는 1929년 8월 25일 조선노동조합 나니와[浪速]지부에서 열린 신간회 오사카지회 확대간사회에서 전형(銓衡)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9년 가을 김문준 등 제주도 출신 노동 운동가들과 히가시나리구에서 고무공조합을 결성하고 이카이노[현 이쿠노]를 중심으로 임금 인상,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는 쟁의를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1930년 봄 고무공조합은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의 일본화학노조 오사카지부로 가맹하여 오사카전협운동의 중축을 이루었다. 8월 고무공의 파업을 준비하던 핵심 인물 김문준이 구속되자 조몽구가 뒤를 이어 노동조합 조직을 재정비하고 노동 쟁의 및 러시아 혁명 13주년 기념 투쟁 등을 활발히 전개해 나갔고 1931년 5월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화학 최대 규모의 총파업을 감행하였다.
1931년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의 해체와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가맹을 논의하기 위해 오사카를 방문한 김호영(金浩永)이 김문준(金文準), 조몽구와 협의한 결과 10월 29일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간사이지방평의회는 노선 채택을 결의하였다. 12월 14일 전국 조합원수의 60%를 차지하는 오사카에서 열린 전국대표자회의 및 확대중앙집행위원회에서 해체와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가맹, 그리고 이를 위한 기본 작업으로서 지역별 조합에서 산업별 조합으로의 재편성 등을 골자로 한 선언문, 규약, 투쟁방침안 등이 결정되었다. 조몽구는 오사카 지역의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30년 오사카 조선노동조합 상임위원으로서 광주 학생 운동에 대한 응원을 오사카지방협의회 및 노농협의회 등 일본의 관련 단체에게 호소하였다. 조몽구 등은 광주 학생 운동이 단지 조선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무산 계급에게도 중대한 계급 문제이기 때문에 공동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오사카에 살던 제주 출신 한인들의 자주운항운동으로 문창래(文昌來), 김달준(金達俊)과 함께 동아통항조합을 결성, 운영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월 26일 일본인 사회주의자와 함께 오사카지방 선거투쟁동맹 조직을 결성하고 활동하였다. 7월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이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일본화학노동조합 오사카지부로 해소된 후 1931년 1월부터 오사카지부 책임자로 6월 하순부터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산업별노동조합 오사카지부 협의회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일본 공산당에 입당하여 오사카지방위원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며 ‘소비에트 러시아를 지키자’, ‘중국혁명을 지키자’, ‘천황제 자본가 지주 정부를 무너뜨리자’, ‘노동자 농민의 소비에트정부를 만들자’, ‘일본공산당 만세’ 등의 제목으로 일본 공산당 강령, 정책을 알리는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일본화학노동조합 오사카지부 뉴스 및 팸플릿, 『무산자신문』 등을 작성, 배포하였다. 결국 1931년 7월 31일 검거되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1933년 1월 19일 오사카에서 징역 4년의 판결을 받고 투옥되었다가 1935년 12월 도쿠시마(德島)에서 출옥하였다.
해방 후 제주에서는1945년 9월 10일 제주도 건국준비위원회 결성 당시 집행위원, 제주도 인민위원회 표선면 위원장, 1946년 12월 결성된 남조선노동당 전남도당부 제주도위원회의 초대 부위원장을 역임하였다. 4·3사건이 일어났을 때 무장 투쟁에 반대하였지만 이후 한라산에 들어가 활동하다가 1948년 8월 북한 해주에서 열린 남조선 인민대표자회의에 참석하였다.
한국 전쟁 발발 후 남하하여 부산에 은신하던 중 1951년 9월 30일 부산에서 체포되었다. 1953년 3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조몽구는 출옥한 뒤 고향 성읍리로 돌아와 살다가 1973년 12월 15일 사망하였다.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성 공원에 있는 오사카 지역의 사회 운동을 기리기 위한 오사카 사회 운동 현창탑의 방명판[顯彰大阪社會運動之戰士]에 김문준과 함께 게재되어 있다.